내가 아는 것
최근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알려고 노력해왔고, 안다는 것을 가지고 설교해 왔다. 그런데 이만큼 나이가 들면 더 많이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정반대의 상념들이 나를 괴롭힌다.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어.”라는 것들이다. 얼마 전 고대 그리스에 대한 책을 보면서 이미 여러 번 보았고, 다른 책에서도 그 주제에 대한 내용들을 접한 적이 있는데 눈은 본 것으로 확인되지만 사고로는 새롭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것을 다 잊었는가? 눈으로만 보고 넘어갔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학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다 알았을 법한 것들이지만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 나 자신을 말한다면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것이다.” 딱 이 말이다. 세상의 돌아가는 뉴스들을 봐도 도대체 감이 잡히는 것이 없고 모르는 것 일색이다. 뉴스를 볼 때마다 충격으로 와 닿기 때문에 뉴스 보기가 겁난다고 해야 할까? 인간은 이렇게 서서히 소멸되어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그동안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랐고, 에고의 성에 갇힌 사람마냥 말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무식하지 않기를 바랐고, 모두가 공감하는 설교를 하려고 했다. 불성실하거나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벗어나거나, 비협조적인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타인이 아니라고 하면 어쩔 도리가 없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노력했다는 것이다.) 진심이다. 학문에 대해서도 한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저것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마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것 중 어떤 주제를 말하게 하면 나름대로 말이 나온다는 것은 뭐라고 진단해야 할지 모르겠다. 언젠가 누가 나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에 대해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설명하는가?”고 되물었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나 나나 성경에 있는 것을 가지고 정리해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대학 시절 교생실습을 갔을 때 그 학교의 교목인 목사님이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그것이 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물은 3가지의 변형을 갖는다. 고체는 얼음이고, 액체는 물이다. 그리고 기체는 수증기가 된다. 그러나 성질은 하나이다. 그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은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나누어 나타난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랬다. 이 설명은 적절치 못하다. 왜냐하면 몸통은 하나인데 변신을 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각 독립체가 아니므로 아들로 사역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가, 그 일부분이 아들이 되어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성경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표현이 있고, 구약에서도 성령에 대한 표현이나 그의 아들을 보내 대속하게 한다는 표현들이 나온다. 그러나 딱 ‘삼위일체’이라고 표현한 단어는 없다. 성경의 표현들을 종합해볼 때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고 확신한다. 삼위일체 논쟁이 불거진 것은 300년대 초반이었다. 아리우스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사람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아리우스는 당시 기독교계에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사람이었다. 당연히 신앙계에 혼란이 일어났고 여기에 같은 지역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아타나시우스가 그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하면서부터 ‘삼위일체 논쟁’이 시작되었다. 당대 최고의 이슈가 되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니케아 공회를 소집할 정도였다. 결국 아리우스는 이단으로,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인 ‘삼위일체’를 공식신앙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채택하게 됐다는 말은 취소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후 긴 세월 동안 여러 사람들에 의해 도전을 받았지만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에서는 확고한 신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삼위일체를 어떻게 성도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당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내가 설명해도 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오늘 삼위일체를 거론하는가? 중요성 때문이다. 우리가 삼위일체를 말할 때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마리아라는 사람의 몸에서 태어났는데 이미 창세전부터 계신 분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또 다른 하나의 인격체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실제 성경은 예수님을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말하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또 창세이전부터 계셔 그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고도 말한다. 게다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다고 단순히 말하면 될 것인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우선, 성경은 삼위를 분리해서 표현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러나 ‘하나’라고 말씀하신다는 것. 우리의 두뇌와 언어로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지는 천국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확인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이끄시고,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데 있어 완벽함을 보여주셨다. 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본다. 하나님을 해석하려고 하기보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로 섭리하셨다는 시각으로 봐야 한다. 무리하게 설명하다가는 스스로 함정에 빠질 수 있고, 이단으로 분류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렇게 역사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니 삼위일체는 성경에 나타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세 분이며, 또 하나라는 것을 믿는 믿음인 것이다. 이해가 되어야 믿을 수 있다고? 믿으면 이해가 될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이것뿐이고, 나 자신이 반세기나 넘게 신앙생활을 하고, 성경을 보고 신학을 접한 자가 아는 것이 이것뿐이라는 것은 부끄럽게 여겨지나, 믿어야 하는 것을 확실히 믿는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