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잘 하는 법
이 제목이 매력을 끌지 못할지 모른다. 제목이 내용이 고루하게 전개될 것을 암시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기쁘게 더 깊은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라고 자문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교회에 출입하는 것이나 예배에 참석하는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안다. 신앙이 좋으면 교회에 출입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석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신앙이 좋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교회는 신앙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이라는 것과 잘한다는 것은 여러 면으로 검토가 가능하지만, 일단 보편적인 측면을 놓고 말한다면 ‘기쁘게 신앙생활 하는 것,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는 것,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 신앙이 우리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 등이다. 이렇게 말해도 부족함을 느낀다. 하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위의 말에만 주목한다면, 신앙생활 하는 것이 즐겁고 은혜를 깊이 알아 내 삶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선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해 확신을 가지려고 해야 한다. “확신을 가지려고?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감동이 아니라 나의 의지를 말하는 것입니까?” 하고 물을 것이다. 사실 그렇다. 믿음에는 의지가 요구되는데 “난 하나님을 믿기로 했어!”라는 자기 선언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대로’라는 말은 내가 그 감동을 느끼지 못하면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때로 주변의 일로 흔들릴 수 있다. 다시 감동을 기다리는 동안 당신의 신앙은 침체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은 신앙을 생활화 하는 것, 예배에 출석이나 봉사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잘해야 한다는 신앙적인 관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예배 출석하는 것을 표피신앙이라고 치부하고 내면의 진정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용물이 그릇에 담기지 않으면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또 그릇은 그 내용을 더욱 의미 있게 한다는 점을 안다면, 예배 출석을 단순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예배 참석의 가치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자문에 시달렸다. 여기에는 예배 인도자의 헌신과 예배 참석자의 정성 모두가 점검되어야겠지만, 예배라는 형식을 무시해서는 바르고 건강한 신앙이라는 내용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신앙이 좋아지기 위해서는 기도나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들음으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좋아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노력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력이 없이 구원의 즐거움, 구원의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세상에서 최고의 감동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누구라도 ‘어머니!’라고 답할 것이다. 모든 일에 사랑으로 희생하고 돌보는 실천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감동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아들을 주시는 깊은 감동의 본체를 주셨다 해도, 느끼는 감동의 깊이는 성도마다 다르다. 이 사랑을 깊이 느끼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처럼 사랑, 섬김, 희생을 행해 보라.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체적으로 느끼게 된다. 부모가 되면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듯 말이다. 이럴 때 성령의 역사도 일어나고 감동은 크게 다가온다. 사변적인 신앙에서 벗어나는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 그러면 이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신앙을 갖게 되고 신앙의 맛을 느끼면 더 깊은 자리로 들어가기를 열망한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더 맛있게 할 수 없을까?” 나도 모르게 반응하듯 신앙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노력해야 한다. 한 가지 더 덧붙여야 할 것 같다. ‘거룩한 삶’이란, 믿기로 하거나 믿음의 생활을 하면 자연스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뭐가 또 있어요? 라고 물을지 모른다. 이 세상을 살면서 믿음이 좋은 사람이든 아니든 누구를 막론하고 유혹과 시험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운동경기를 할 때 수비가 안 되면 아무리 공격 포인트를 올려도 이길 수 없다는 원리를 적용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유혹은 이겨내야 하고, 시험은 극복해야 한다. 가능하면 유혹이나 시험을 받을 자리로 가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늘 그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말씀하는 것보다 “거룩하라.”고 말씀하신다. 거룩함도 예수를 믿어 거룩하게 된(칭의) 것을 말씀하시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식과 삶에서 ‘거룩하라’이고, 거기는 ‘유혹과 시험을 이기라’라는 메시지가 포함된다. 믿음의 양태를 잘 유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거룩은 유혹과 시험이 없으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유혹과 시험을 이김으로 증명하게 된다. 유혹과 시험을 이기는 능력이다. 유혹을 이기는 거룩은 신앙이 성장하게도 하고, 굳건하게도 만든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신앙이 좋아지는 방식이다. 더 말할 수 있고, 더 말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것이 좋겠다. 더 하면 배불러 정신적 소화에 지장이 생길 것이니까. 신앙이 좋아지면 어떻게 될까? 깊이와 높이가 다 다르겠지만 좋지 않을 때 상상할 수도 없는 영적인 은혜 가운데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