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정신
언젠가 한 복싱 선수가 자기 체급의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사실 그렇게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나 각고의 노력과 연단을 했겠는가. 기자가 물었다.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가장 큰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 후 ‘헝그리 정신’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돌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선수가 얼마 가지 못해 방어전에서 실패해서 챔피언 자리를 내주었는데, 나는 그가 그 정신으로 곧 다시 챔피언의 자리를 탈환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그것으로 끝나버렸던 것이다. 사람들의 아쉬움이 컸다. 나도 그랬다. “왜 재기하지 못했을까? 그 정신이 있는데,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그가 헝그리 정신으로 챔피언에 오르자 헝그리 정신이 사라진 것이다. 형편이 나아졌으니까! 그러나 그 선수는 사라졌지만 그가 말한 헝그리 정신은 지금도 많이 언급되는 표현 중에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도 우리나라 감독이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라는 말로, 그 표현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나는 ‘헝그리 정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좋게 보지만 또 어느 정도는 그렇지 않다. 헝그리 정신은 그야말로 ‘정신’이지, 한 사람에게 적용을 하면 헝그리해지지 않을 때는 그 정신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복싱 챔피언처럼 말이다. 그 선수가 처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부상을 당했다거나 여러 가지 일들이 얽혀 운동하기 어려웠다거나 하는 자기만의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가 내뱉은 ‘정신’만큼은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오히려 이런 말이 어떨까? 왕관의 무게를 견지지 못하는 자는 왕관을 쓰지 말라! 내 표현이 너무 무거운가? 뭔가를 얻으려면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고, 또 얻은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기꺼이 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왕관은 그에게 부담스럽고 그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만다. 일반적으로 왕관을 쓰는 것만 열망하지 그 다음은 아무런 대책도 없고,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왕관을 쓰면 더 큰 붕괴가 일어난다. 살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하나를 가지려면 다른 하나를 잃어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하면 그것을 하라! 퀴리 부부는 라듐을 발견했다. 그것으로 세상을 바꾸었고 노벨상도 받았다. 그러나 부부 모두 라듐(방사능)에 오염되어 죽게 된다. 그래도 그것이 아름다우면 그것을 할 것이다. 단, 죄악이 되는 일에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된다.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지만 그 뒤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것으로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어렵게 만드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 그 기준은 하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