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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독교인의 최고의 덕이자 최고의 행위 기준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과 동일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표현을 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지 서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이 표현 자체가 축복이라고 보고 또 어떤 사람들은 부담스럽게 여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라는 절대적인 목적을 주셨다. 그것도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라는 것이었다. 이 섬김에는 순종, 그 뜻을 이룸 등이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마치 부모님이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위해 가장 잘 사는 것이다. 부모님은 우리가 잘되기만을 바라신다. 그러나 인간인 부모는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가끔은 내게는 온전한 것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 하나님은 온전하시고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나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을 살게 된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단어가 부담스럽게 여겨진다면 사고가 잘못된 것이다. 정욕적인 감정으로 내가 잘되면 남이 못되고, 남을 잘되게 하면 내가 손해 본다는 그릇된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에 속하는가?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죄가 아닌 일은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교사를 한다고 영광이 되고, 노동을 한다고 영광이 안 되는가? 절대 그런 일은 없다. 개는 짖고 새는 창공을 날듯이 모든 존재는 그가 하는 일이 있다. 그것 그 자체가 영광이 된다.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직업 자체가 영광이니 아니니 하는 것을 따질 만한 것은 거의 없다. 영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직업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죄와 상관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과학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인가? 하나님은 학문을 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는다. 마음에 지식탐구의 욕망은 죄악이 아니다. 이런 욕망이 없이는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니까. 그러나 탐구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방법을 동원하거나 탐구의 목적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 아니면 그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참 일에 몰두하다 보면 “과연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인가?”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잠깐 스스로 가늠해 보라.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무슨 일을 하든 세상에서 유명해지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웃기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의 도움에 굶주린 분이 아니고 그만큼 비굴하지도 않으시다. 이런 갈림길에서 하나님 때문에 못했다는 말도, 하나님 때문에 손해를 봤다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것은 당신 자신이고 지금 그만 두게 되는 것은 축복이기 때문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나 예술가들은 그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경우가 많다. 학문이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마치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는 느낌을 받게 되고, 예술을 하면 할수록 역시 그런 감정을 갖게 된다. 예술의 경우는 인간의 극적인 타락, 좌절, 수치 등을 담아야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기 때문에, 또 그런 감정의 표현들이 극적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단지 예술로만 보아야 할지, 아니면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할지, 정말이지 애매할 때가 많다. 이것은 자신의 신앙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 자신을 실족하게 하는 것은 배제할 수 있는 신앙이 발동해야 한다. 해외 청년집회에 갔을 때 어느 목사님이 “000가 예수를 믿는다고 방송에 출연해서 말했어요. 얼마나 멋진 일이에요!” 나에게 말했다. 자기가 청년들이 모인 자리에서 설교할 때 이 말을 언급하겠노라고 하면서. 그분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유이겠지만 그것을 자랑스럽게 말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여겨 내가 이런 말을 했다. “그 사람이 예수 믿는 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인가요?” 당시 그 가수는 최고인기 스타였고 술꾼이고 또한 그의 어머니가 권사였다.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그 사람을 설교단에서 언급하는 것은 “그 가수도 예수 믿으니 너희도 예수 믿으라.”거나 “그 가수가 예수 믿으니 너희가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를 알아라.” 뭐 이런 의미이지, “그 사람도 술독에 빠졌으니 너희도 빠져도 된다.” 그런 뜻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창피하게 생각했다. 그가 예수 믿는 것은 좋으나 방송에서 술꾼으로 널리 알려졌고 괴짜인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그가 예수 믿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 그 가수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런 행동을 끊어야 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소중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런 것인지 모른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마음을 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고, 족쇄가 될 것이다. 내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실제 시도 해보면 안다. 당신이 오늘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선언하고 그렇게 살아보라. 그러면 왜 이런 말씀이 성경에서 강조되는지 차츰 이해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그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보배네?!” 하고 여기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게 될 것이다. 엄마들이 어린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종종 한다. “공부하라. 공부하라 하는 것은 내가 좋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네가 좋아지게 하려는 것이다.” 맞다. 일부분은 우리가 다루는 주제에 적용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일이며, 그렇게 하는 우리 자신이 잘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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