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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지식과 믿음

지식과 믿음

신앙 가운데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는 신앙’과 ‘성경을 보지 않는 신앙’이다. 가끔, 기도하면 성경을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성경을 보는 사람은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성경을 보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 신앙을 상식적 신앙 혹은 무속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가 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응답이 되지 않는다는 무의식적 기도 무용론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러면서도 신앙 생활하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을 고취시키는 교재이다. 따라서 성경을 보는 자는 하나님을 보는 눈이 넓어져 기도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고 기도의 문이 열린다. 그런데 왜 성경을 보는 것과 기도를 하는 것이 따로 노는가? 이것은 성경을 하나의 지식이라고 보고, 기도는 지식과는 상관없는 응답에 대한 기대로 보는 것이다. 이도저도 아닌 사람도 있지만. 신학교에 갓 들어간 시절 한번은 내가 기도하고 약을 먹는 것을 보면서 급우가 “약을 먹을 것 같으면 기도하지 말고, 기도하면 약을 먹지 말아야지.” 하고 말을 던졌다. “왜 그렇게 해야 하지?”라고 내가 반문하니까 그 뒤에 뭐라뭐라 했는데 나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대강 이런 말을 했었다. 공부하면 기도 안하고, 기도 했으면 공부 안하고 시험 치면 되나? 식사할 때도 기도 안하는 것인가? 라는 것들이다. 이런 극단적인 믿음은 이상한 결과를 초래한다. 마치 약을 먹는 것은 믿음이 없는 행위이고, 믿음이 있다면 기도하고 약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런 것이다. 그런 식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한다면 기도하면 성경을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면 성경을 보면 기도할 필요가 없는가? 이런 괴상한 말은 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마술 책이 아니고, 외워야 하는 주술도 아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구절을 외운다고 생각해 보라. “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면 찾을 것이요....” 이 구절을 외운다고 하나님이 역사를 베풀지는 않으신다. 이 구절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기도하고 또 행동으로 옮기게 한다. 그러니 이 성경을 본 사람은 이런 성구를 알거나 외운다고 자랑하고 끝낼 일이 아니라 믿음으로 수용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성경을 마음에 새긴 사람은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이렇게도 기도하기도 하고 저렇게도 기도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살피고 따르려고 한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구하는 기도와 행위를 계속할 것이다. 마법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 한 방에 하나님의 뜻이 짠 하고 보이거나, 번쩍하고 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삶에 적용해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성경은 믿음을 고취시키는 지식이 아니라 단지 많이 아는 지식일 뿐이다. 성경을 많이 알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공상신앙이다. 성경말씀 자체가 아니라 말씀이 내 인격 속에서 믿음과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성경을 많이 알면 내 믿음이 바뀌고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변화하게 된다. 성경지식은 믿음을 촉발시키고, 구축하며, 확장하고, 굳건히 한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높이와 깊이가 더 발전된다. 그러나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아도 지식으로만 그치고 적용하지 않으면 지식 그 자체가 어떤 영향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지식이 사람의 신앙을 오히려 저해하는 경우도 벌어진다. 입만 열면 성경구절이 줄줄 나오는 신학자들 가운데서 신앙인격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경우는 지식으로서만의 성경이지 삶을 바꾸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지식은 아닌 것이다. 성경을 아는 것이 즐거울 수 있다. 또 그것을 가지고 명예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바뀌지 않는 지식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하나님 말씀의 지식(심지어 세상의 지식이라도) 그것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도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방해한다면 그 지식을 따라 반응하지 않는 나의 내면을 바꾸든지 아니면 그 지식을 버려야 한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버리라.”(마5:29) 이것을 실행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지식을 잘못 다루어 문제이지 지식 자체가 우리를 실족케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엉터리 지식마저 그것을 가려서 볼 줄 모르는 나 자신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확실한 것은 지식은 믿음을 위한 것이지 믿음이 지식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호작용으로 상승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믿음 외의 것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믿음 가운데 역사하신다. 말씀의 지식이 없는 신앙, 지식은 있으나 그것을 믿음으로 열매 맺지 못하는 신앙, 이것을 다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지식이 더욱 강력한 믿음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지식이 꽃피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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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재미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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