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손을 잡고 교회를 다녔으니까 한편으로는 교회가 아주 자연스럽고 익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고 학교에서 진화론이 기승을 부리고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교회에 대해 비판을 하자 나도 모르게 내 속에 있던 조그만 의심의 불씨가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교회를 꼭 다녀야 하는가?”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신앙은 정말 필요한가?”하는 질문들이 마음에서 하나둘 생기더니 곧 이것저것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습니다. 중학생 시절 시골 중학교로 전근 가신 아버지와 함께 그곳에 가서 생활한 기간 동안 교회를 빼먹어도 마음 한구석은 찜찜했지만 별로 탈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다시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되었지만 교회에 대한 의문들은 점점 노골화되었습니다. 비록 학교에서는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과 대립하여 기독교를 옹호하는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사실 무신론자 자체를 공격한 셈이지만), 내 마음 한구석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유무를 확정 짓고 싶었습니다.
내 나름대로 골똘히 생각도 해보고 책들도 보곤 했지만 나의 실력으로는 하나님이 계신다, 안 계신다를 단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나도 모르게 몸으로 체득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소위 내 뜻대로 사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버리지 않으신다고 했으니까 결국 더 확실한 방법으로 불러주실 것이라고 어중간한 미련을 들이대면서 말입니다. 그러던 중 나는 군대에 갔고 군에서 큰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했다가 군 생활을 1년도 못 채우고 제대했습니다. 그 후 기가 막힌 삶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로 퇴원을 했던지라 정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밥 먹는 것, 책을 읽는 것 정도만 할 수 있었지 걸어 다닐 수도 없고, 뭔가를 계획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낫게 되었고, 그러다 다시 잠깐의 방황 끝에 주님의 부르심으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여러 가지 혼란과 의심을 주었던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부담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내가 보아왔던 그 모순들을 어떻게 다 해결할 수 있는가? 등등의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고 내가 가야 할 길이 험난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것과 지금까지 보아왔던 교회의 제도를 나 자신이 받아들이고 녹아들어야 할지에 대해 혼동 가운데 서 있어야 했습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일단 내가 목회자로 준비해나가야 할 것들에 대해서 준비한다는 것과 오래된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나는 좀 다르게 목회를 이끌도록 하겠다는 생각만 점점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일찍부터 담임 교역자로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뭔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교회가 달라지려면 목사인 내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으로 바뀌고, “목사인 내가 무엇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 것인지” “무엇이 제거되고, 무엇이 강조되어야 하는지”의 생각으로 좁혀졌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우리 교회의 목적입니다. 교회는 새로워져야 한다는 확신에 ‘새로운 교회’,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의 목적을 보았을 때 복음으로 사람들을 구원하고, 복음으로 사람들을 은혜의 자리에 세우는 것, 그래서 ‘복음의 비전이 있는 교회’를 정했고, 우리는 이 땅을 살고 있지만 이 땅의 노예도 아니고 이 땅의 삶이 영원하지 않으며, 결국 천국을 향해 가는 삶만이 이 땅에서 진정한 삶을 산다고 믿어 ‘미래지향적인 교회’로 정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마다 목적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나도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이것을 목적으로 삼고 교회를 세워나간다는 굳은 다짐이었습니다. 쓸데없는 인간의 소리를 가능한 한 없애고, 동원하듯 하는 억지로 일을 꾸미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순수하고 바른 신앙을 추구하는 교회를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실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오늘 세간에는 교회의 문제점들을 비난하고 교회의 존재에 대해 의문들을 던집니다.
그렇다고 교회의 존재의 필요성이 없을까요? 몇몇 교회나 목회자의 잘못이 기독교 전체를 대변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진리는 그 자리에 서있고, 오늘도 역사하는 것이니까요. 그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이십니다. 단지 하나님을 잘못 모시는 것이지, 그들이 하는 행동이 곧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교회를 개척해서 시작할 때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운다는 마음이 아니라 정말 참된 교회를 세운다는 각오를 다짐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교회가 그렇게 많은 서울에서 개척하느냐고 의문 또는 비아냥거림 비슷한 말들을 했습니다. 나의 뜻은 교회가 많은 곳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많은 곳에 교회는 더 필요하고, 그렇게 많은 교회 중에 진정한 교회를 세우고 싶다는 것입니다. 서울에는 한 교회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물론 다른 훌륭한 교회도 있겠지요.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1.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진정한 구원의 기쁨과 평화와 안식이 있는 교회
2.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랑과 헌신이 있는 교회
3.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만이 주시는 은혜와 소망이 넘치는 교회
4. 무엇 하나 붙들 수 없는 세상에서 진정으로 붙들 수 있는 진리를 전하는 교회
5.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하는 교회
6. 늘 우리의 심령에서 은혜의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다짐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벧엘교회는 이런 구호만 난무하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행하고 있고,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주님의 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들어온 사람보다 훨씬 많고, 주님의 품에 들어왔다 해도 그 은혜 속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사는 사람보다 훨씬 많습니다. 우리는 구원과 성숙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기도하고 순종할 것입니다. 나는 목사로서 큰 교회, 작은 교회를 마음에 두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원시켰는가? 얼마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는가? 이것이 나의 간절한 바람이고, 벧엘교회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당신도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