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7:7,8)
이 구절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구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해서 얻었는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것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라면 기도는 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열심히 노력한다면 기도는 무슨 필요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한다면, 자신이 노력해서 다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망상이며, 기도와 노력을 분리하는 것은 불신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상하게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아 기도하고 노력하면 마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같고, 기도하고 약을 복용하거나 병원치료를 받으면 믿음이 약한 것 같고, 기도만 전념하고 몰입하면 믿음이 온전하여져 하나님이 다 이루어주신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고한다면 다윗이 기도하고 왜 전쟁을 했으며, 바울은 기도하면 되지 왜 열심히 다니면서 사람들을 구원시킬 노력을 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모든 것을 이루어주실 수 있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 외(이것은 하나님이 판단하실 일입니다.)는 우리에게 기도하며 노력하라고 하십니다. 노력하라고 명령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기도하라고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은 기도하는 신앙인을 통해 역사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간절히 원하는가? 주님은 우리에게 이 질문을 하게 하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구하는 이가, 찾는 이가,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이 내용을 보면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사람치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또 그 중에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는 자도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가 주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느껴집니까? 간절함이?
또 하나는 ‘노력’이 이 안에 있다는 것을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구하는 이마다...” 예수님이 얼마나 노력을 강조하시는가 보세요. 그는 아침부터 저녁, 그리고 밤까지 기도와 사역을 열심히 이루어가셨습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요.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의 임무를 이루기 위해 아침부터 깊은 저녁까지 노력하셨다. 라고 말입니다. 과거 국가대표였던 선수가 유럽 프로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는데 처음 충격을 받은 것이 같이 시합에서 뛰었는데 시합수당, 승리수당이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선수는 그 시합에서 별로 큰 역할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승리수당은 자기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입니다. 나중에야 그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0.1%가 낫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격차인지를 깨달았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매일 0.1% 더 노력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별로 노력하지 않고 조금 나보다 나은 사람을 두고 조금밖에 낫지 않다고 하며 다른 대우에 불만을 토로합니다. 볼을 차지할 때 0.1% 빠른 자는 볼 전체를 차지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 가지, 구할 때 주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찾는 이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여기 주어는 무엇입니까? 구하는 이? 열리는 문? 그렇게 되는 자연법칙? 다음 구절을 보면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는냐”(11절)라고 하시는 말씀에서 주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구할 때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구해서 얻는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만 하면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기도를 하면 할수록 기도의 연속성 즉 믿음과 노력을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하나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과 그가 그렇게 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를 지적하자면 이 모든 믿음의 행위를 할 때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는데 “무엇을 원하는가?”하는 것입니다. 잘 되기를 원하고, 시험에 합격하기를 원하고,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한 ‘무엇’이라고 할 수 없죠. 왜냐하면 이것은 그냥 원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다. 진심으로 바라는 ‘무엇’ 말입니다. 슈퍼에 갈 때 무엇을 구입해 올지 목록을 명확하게 기록해 가지 않으면 홍보하는 소리에 끌려 사거나,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고 나도 필요하다고 삽니다. 나중에 보면 정작 구입해 와야 할 것은 두고 다른 것들을 구입해온 셈이 됩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저녁에 배를 타서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밤의 달빛을 받으며 배는 건너편을 향해 미끄러지듯 가고 있었죠. 그런데 갈릴리 바다 가운데 왔을 때 광풍이 호수를 내리쳤습니다. 제자들은 어릴 적부터 갈릴리 바다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자 중 어부출신이 많았습니다. 광풍을 한 번 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닐 것이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당연히 온갖 조치를 취했겠지요. 그러나 배가 물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가득요. 이제 배가 가라앉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제자들은 이 위기상황에서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배 한 편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일어나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고, 제자들을 향해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제자들을 향해서도 꾸짖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새롭게 보면서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기면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말했습니다.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니 순종하는가?”(눅8:22-25) 하나님이지 누구겠습니까?
내가 이 성경을 이야기한 것은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봅니까?
주님을 믿지 못했다는 것이고(아마 지금까지 자신의 능력을 믿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가자고 명령하셨고 주님이 함께 계신다면 결코 주님이 죽지 않을 것이고 함께한 우리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셨으면 건너편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자 자신들의 능력으로 해결하려 하고, 그것이 안 되자 죽는 줄로만 여겼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으로 믿지는 못한 것입니다.
주님을 모신 우리의 인생은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지 주님이 대신 살아주지 않으며, 주님의 능력으로 건너뛰게 해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바다 위에 띄워진 당신의 배는 만경창파에 순풍에 미끄러지듯 가는 경우가 있지만 광풍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것은 광풍을 막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광풍 속에서 함께 하시고, 광풍을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광풍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건너편으로 가는 것이지요.
우리의 약점은 게으르고, 어려움을 피하고자 하고, 온실에 들어가 만사형통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하며 기대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호수를 지나가면 광풍을 만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고, 광풍은 예수님을 보면 겁내서 다가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그 사이를 지나게 된다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릴 때, 간절히 기도하고 노력할 때 이루시는 분이 누구냐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
주시는 분은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합니다. (엡3: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