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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설교에 헌신된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다

일산벧엘교회 담임 박광석 목사는 기독교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설교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설교는 교회에 나와 직접 예배에 참석해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신념 때문이다. 성경 강해를 잘 하기로 소문난 그의 설교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일산벧엘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길 외에는 없다. 여타의 행사나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는 교회 운영에도 1988년에 7명으로 시작한 교회는 현재 장년 1만 명의 교회로 성장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 자체만으로도 기뻐한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박광석 목사가 《복음의 언어, 로마서》를 펴냈다. 책으로나마 만나 본 그의 설교는 치밀한 해석과 적실성 있는 적용, 명쾌한 결론을 지닌 좋은 설교였다. 지난 9월 21일 일산벧엘교회에서 박광석 목사를 만나 신간과 설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을 저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교회에서 오랫동안 강해한 로마서의 원고를 모아 출판했다. 물론 책을 내려는 의도로 작성된 원고는 아니다. 설교 그 자체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책이 만들어진다면, 그리고 그것이 한국 교회에 도움이 된다면 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우연히 그 기회가 허락되어 출간하게 되었다.

 

로마서의 진리가 ‘지금, 이 시기에도’ 선포되는 것이 필요한가?

로마서는 당시 세계의 중심인 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에 보내진 편지다. 로마는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고, 심지어 노예조차도 신분이 높은 노예들이었다. 그런데 로마는 사도의 방문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복음의 기본 진리가 하나하나 설명될 필요가 있는 상황이었고, 로마의 수준에 맞게 진리가 잘 표현된 것이 로마서다. 기독교 역사 내내 로마서는 중요하게 여겨졌다. 크리소스토무스나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루터나 칼뱅이나 칼 바르트에게도 로마서는 매우 중요한 책이었다. 그만큼 로마서에는 진리가 가치 있는 방식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결국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진리이니까 선포되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물론 세월은 많이 변했다. 2000년 전 사람과 오늘날 우리는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생각을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사람이라는 것은 같다. 그렇기에 옷이나 생활의 변화를 읽기 전에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더 깊은 이해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시대는 빠르게, 그리고 다방면으로 변하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변화가 심해질수록 오랫동안 중요하게 여겨진 변하지 않는 진리를 다시금 선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강해 설교를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강해 설교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신학을 하기 이전부터 성경 자체에 대한 설교를 듣고 싶었는데, 많은 목회자들이 본문을 읽고 그것과 상관없는 설교를 했다. 그런 설교에 대한 염증이 있었다. 그래서 목사가 된 이후에 스스로 그런 설교를 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늘 생각했던 것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것을 그대로 잘 전달하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말보다 훨씬 뛰어나다.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잘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머릿속에 이것이 늘 각인되어 있었고, 그래서 본문 중심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전도사 때부터 본문 중심의 설교를 했다. 처음부터 주변의 목회자, 교사들에게 많은 말을 들었다. 그건 설교가 아니라 성경 공부라고들 했다. 하지만 그게 성경 공부든 설교든 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는 게 중요했다. 성도들이 싫었을 법도 한데 오히려 그런 설교를 매우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정신과 방법이 요즘 말하는 텍스트 중심의 설교, 주해식 설교, 강해 설교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해 설교를 하려고 해서 강해 설교를 했던 것이 아니다. 본문 자체를 잘 전달하려고 노력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강해 설교였던 것이다.

 

강해 설교는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특히 로마서는 강해 설교하기에 꽤나 부담스러운 책이다. 그럼에도 강해 설교를 고수해야 하는가?

사실 강해 설교는 책의 종류를 막론하고 어렵다. 로마서뿐 아니라 어떤 책을 선택해도 중단하기 십상이다. 강해 설교는 그만큼 어렵다. 그럼에도 왜 강해 설교를 해야 하는가. 먼저 설교를 종류별로 구분해서 고민해 보자. 설교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순화해서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제목 설교’와 ‘강해 설교’가 그것이다. 제목 설교는 주제를 먼저 정하고 그것과 관련된 구절을 선택해 설교하는 것이다. 강해 설교는 본문을 먼저 정하고 강해해 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강해 설교는 연속 강해 설교다.

이 두 가지에는 장단점이 있다. 제목 설교의 장점은 시의적절한 주제를 선택해서 설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본문을 편식하게 될 위험이 있다. 평소 자신이 좋아하고 자주 생각하는 주제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자신이 선택하는 방식을 지속하면 자기 생각을 넘어설 수 없다. 반면 연속 강해 설교의 단점은 본문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연속 강해 설교의 장점은 생각보다 크다. 장절이 연결되어 있기에 연속으로 설교해 나갈 때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매여서 설교할 수 있다. 여러 장단점을 생각해서 적절히 자기 방식대로 하면 되지만, 나의 경우는 준비를 많이 하더라도 본문에 매여서 설교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사실 이 두 가지 방법 중에서 적합한 설교 방식을 고르는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경적 설교를 할 것인가’, ‘비성경적 설교를 할 것인가’이다. 성경적 설교란 성경 본문에 의지해서 설교를 하는 것을 말한다. 비성경적 설교는 성경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지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자기중심적 설교를 말한다. 성경에 의존하느냐, 의존하지 않느냐의 차이다. 여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비성경적 설교는 절대로 안 된다. 주제 설교를 선택하더라도 철저하게 성경적 설교를 해야 한다.

 

연속 강해 설교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연속 강해 설교를 지겨워하는 성도들도 많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연속 강해 설교가 힘든 이유는 성경이 그만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절을 설교해도 그 절만 보아서는 올바르게 설교할 수 없다. 한 절은 그 앞뒤 구절과 연관되어 있고, 그 앞뒤 구절은 또 그 앞뒤 구절과 연관된다. 문단은 문단끼리, 장은 전체 책과, 책은 전체 신구약과 연결된다. 한 절을 읽으려 해도 준비할 것이 매우 많다. 지식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도 매우 많으며, 묵상을 위한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준비해야 한다.

준비가 부족한 사람은 금방 밑천이 드러난다. 성도들이 재미없어 하는 이유는, 설교자 스스로가 그것을 연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지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지쳐서 연속 강해를 끝낸다. 준비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완벽한 준비를 수치화할 수는 없다. 30을 하고도 다 했다는 사람이 있고, 100을 하고도 부족하다는 사람이 있다. 얼마를 준비했느냐보다는 스스로 이제는 사람들 앞에서 설교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가, 또 연속 강해를 시작할 힘이 생겼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나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늘 열심히 준비할 뿐이다.

 

강해 설교를 시작하려는 목회자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신학교에서 몇 년에 걸쳐 배우지만, 실제로 강해 설교를 해 보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다. 칼은 들었는데, 손에 익지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쉽사리 중단하게 되고,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우선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성경을 충분히 묵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중에게 전달할 만큼 스스로 충분하다고 여길 정도의 이해를 가져야 한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말하면, 상대방은 절대 알아들을 수 없다.

묵상을 할 때는 텍스트 자체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성경을 잘 읽어야 한다. 목회자는 습관적으로 성경보다 주석을 먼저 보기 쉽다. 주석은 학자들이 성경에 대해 학문적으로 해설을 붙인 것이다. 학문적이기에 이론적 근거가 있어야 하며, 그 근거에 대해 반대나 찬성이 있게 마련이다. 즉 해설은 완벽하지 않다. 그런데 성경보다 주석을 의지하는 습관이 들면 해설이 텍스트가 되고, 성경이 참고서가 될 수 있다. 성경을 철저하게 보고, 나름대로 묵상하며, 그 이후에 참고용으로 주석을 보아야 한다.

그 다음은 본문을 넓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 협의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 설교할 본문만 보고 ‘이것이 맞다’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다른 본문과 연결해 보면 틀린 경우가 많다. 성경에는 심지어 같은 말을 서로 다른 측면에서 비추어 설명한 것도 많다. 그것도 상황에 따라 표현이 달라진 것이지, 진리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목회자라면 어느 상황에서, 진리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된 것인지 정도는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잘 설명해 주어야 한다. 이번 설교와 다음 설교의 내용이 상반되면 성도들은 혼란에 빠진다.

어쨌든 스스로가 재미있어야 한다. 스스로가 재미없으면 듣는 이들도 재미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보면 본문의 적용이 상당히 적실성 있게 된 것 같다. 잘 적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적용에는 목회자의 삶이 묻어나야 한다. 그래야 청중에게 적실하게 다가갈 수 있다. 설교자는 하루일과 내내 설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은 설교 준비를 하고 내일은 쉬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면서도, 운전하면서도 설교에 매여 있어야 한다. 늘 설교를 머릿속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직까지 설교에 헌신되었다 말할 수 없다.

요즘에는 목회자에게 전문성이 요구되기도 한다. 음악 목사라고 불리는 사람도 있고, 심방 목사라고 불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만큼은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설교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설교가 가장 중요한 전문성이다. 설교하기를 시작했다면 그때부터 설교 때문에 골치를 앓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자체로 문제다. 나도 ‘내가 어쩌려고 설교자가 되었나’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명이라면 기쁨으로 헌신되어야 한다. 사람마다 그릇의 크기도 다르고, 그만큼 함량도 다를 것이다. 다 똑같은 내용과 수준의 설교를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 매인바 된, 헌신된 책임자로서의 설교를 하는가이다.

 

 

설교의 결론을 위한 조언도 부탁드린다.

설교를 하다 보면 늘 무언가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신학으로 설교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신학에는 실천 신학도 있고 역사 신학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이론 신학(박광석 목사는 조직신학이라는 명칭이 지닌 한계로 인해 이론신학이라 명명했다. -편집자 주)이 도움이 된다.

성도들은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적용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길 원한다. 그런데 설교의 내용이 오리무중에 빠진다든지, 또 다른 질문을 던져준다든지, 다 듣고 나서도 여전히 헷갈린다든지 하면 설교를 듣고도 여전히 갈증이 남을 수밖에 없다. 목회자는 그들에게 명쾌한 답을 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진리뿐이다. 그리고 진리를 전할 때는 이론신학의 힘을 빌리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게 하면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던 그 틈을 메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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