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_circle.png

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손자 길들이기

손자 길들이기

내가 즐기는 몇 가지 중에 하나는 손녀들을 데리고 장난치는 것인데, 이것은 내가 장난을 치지 않으면 무섭게 보고 재미없어 할 것이라는 판단에 나름 서비스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면 싸구려 선물을 하루에 하나씩 준다거나 내 방으로 몰려오면 문 잠그고 문 아래 틈새로 종이를 줬다 뺐다 하는 식으로 골려주는 것 등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아이들은 야단입니다. 상상이 안 간다고요? 나도 사람이에요. 손자들을 앞에 놓고 “자, 기도하자.” “하나님 말씀 잘 들어야지” 그럴 수는 없잖아요. 이러다 보니 의례히 아이들은 나를 만나면 또 무슨 장난을 칠 것인가 궁금해 합니다. 나만의 시간에 얼씬도 못하고, 자기 엄마아빠들이 나에게 대하는 것을 보면 할아버지에게 막 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기 때문에 판단이 잘 안 서겠지요? 난 또 그것을 이용해서 때로는 곤란한 궁지까지 몰고 가는 재미를 봅니다.

네 살배기 아이는 상당히 탄력성이 있기 때문에 장난치는 것이 더 재미있습니다. 지난 번 만났을 때 잠자리에 오줌을 쌌는데 그것이 며칠 계속되었습니다. 자기 부모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두는 것을 내가 보고 “야, 넌 낮에도 오줌이 그냥 줄줄 나오니?” 그렇게 물었더니 얼굴이 빨개지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렇지는 않다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밤에 잘 때도 꽉 힘을 주고 자야 돼, 알겠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눈치를 보니 또 쌌어요. 그래서 내가 “넌 나이가 몇인데 밤에 오줌 싸니? 아무래도 병원 가봐야 하지 않을까?” 아이는 약간 긴장하더군요. 아이의 엄마아빠에게 “내가 오늘 밤부터 오줌 안 싸게 해줄게.” “어떻게요?” “어쨌든 그렇게 해줄게.” “.....”

또 무슨 수를 쓸 건지 궁금해 하면서 웃고만 있더군요.

그때부터 아이가 조금 만 못하면 “너 밤에 또 오줌 싸려고 그러지?” 하고 했더니, 본인도 기가 차는지 “할아버지는 그렇게 장난쳐서 좋겠어요?” “응” “그러면 내가 죽어도 좋겠어요?” “응”.

뭐라고 할 수는 없는데 말은 해야겠고, 말 능력은 짧고, 할아버지라 화를 낼 수는 없고... 결국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이 “할아버지는 장난꾸러기!” “니가 장난꾸러기지. 낮에도 오줌 싸고 밤에도 오줌 싸니까.”

그 날은 좀 이상한 행동만 하면 “너 밤에 오줌 싸려고 그러지?” 하고 말했지요. 몇 번 듣더니 화가 나는지 “할아버지는 장난꾸러기, 개구쟁이, 귀염둥이...”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있는 대로 말하더군요. 점심시간 식당에 갔는데 자꾸만 물을 마시기에 “너 밤에 오줌 싸려고 그러지?” 했더니 입에 손가락을 갖다 가리면서 “쉿” 하는 거예요. 많은 사람 앞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말라는 것이죠. 재미있더군요.

그날 밤 오줌 안 쌌어요! 그리고 계속... 역시 인간은 뇌에 충격을 주어야 한다니까요.

그런데 싫지는 않은지 늘 화상통화를 하곤 합니다.

하루는 자기가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실리(장난꾸러기라고 표현하는 것인데 실제로는 바보 멍청이라는 뜻)니까 아빠가 배워서 실리가 되고, 그 다음에 엄마가 아빠에게 배워서 실리가 되고, 엄마에게 언니가 배워서 실리가 됐는데, 나는 실리가 아니에요.” 그랬다고 자랑처럼 말했어요. 처음부터 바로 뭐라 하면 아이가 부끄러워질까 그냥 웃으면서 “그래? 난 아빠에게 안 가르쳐줬어.”라고만 말하고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끊었어요. 두 주 지난 오늘, 딸에게 전화할 일이 있어 화상통화를 걸었더니 받지 않아 끊고 조금 있으니까 연락이 왔어요. 네 살배기가 전화 온 것을 보고 자기가 나에게 전화를 한 거예요. “할아버지, 왜요?” 왜 전화를 했느냐고 물었어요. 딱히 할 말이 없어 “너한테 물어볼 말이 있어서.” “뭔데요?” “니가 전에 엄마도 실리, 아빠도 실리라고 했잖아. 너희 집에 실리가 몇 명인지 물어보려고...” “실리가 뭐예요?” “씨을리” “아-” “그게 몇 명이냐고.” “없어요. 언니만 씨을리예요.” 언니는 저 뒤에 앉아서 뭘 먹고 있는데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어요. “전에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실리라고 했잖아. 몇 명인지 생각해보고 가르쳐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할아버지는 장난꾸러기!”

이 네 살배기는 울지도 않아요.

분명한 것은 다음에 나에게 ‘실리’라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죠.

그것을 입 밖에 내면 골치 아파지니까요.

이런 것을 기도해서 고쳐야 하는지, 이렇게 고쳐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타인을 어떻게 보는가?

미스바의 국가적 기도(삼상7: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