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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타인을 어떻게 보는가?

어떤 유명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는 외우고 기억해내려 노력할 필요가 없는 시대에 왔습니다.” 이 말은 모든 자료가 인터넷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찾아서 보면 되지 굳이 암기하거나 기억에 저장해 둘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말하고 싶습니다. 찾아보는 것도 일종의 실력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찾으며, 찾은 내용 중에 어떤 것을 참고할 것인지는 간단한 문제만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찾은 인터넷 내용이 신뢰성이 얼마나 높은지, 정말 믿을 수 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른 예이지만 비슷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만 청소년 시절 음악을 좋아해서 유명 테너의 음반을 구입해서 자주 듣곤 했습니다. 그 중에 “공부는 잠 못 이루고”라는 곡이 있었고, 그 곡은 너무 멋졌습니다. 친구들에게도 말할 때도 “야, 내가 듣는 음악 중에 ‘공부는 잠 못 이루고’라는 노래가 있는데 멋지더라.”고 말했죠. 친구들은 클래식에 대해 잘 모르는 데다, ‘테너’라는 말이 나오니까 정신이 가물가물했겠지요. 그러니 “공부는 잠 못 이루고”에 대해서는 정확도 판단력을 상실한 채 받아들였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아, 내가 잘못 알았던 것입니다. “공부”가 아니라 “공주”였습니다. 분명히 내가 엉터리로 말했지만 그 원흉은 음반회사의 인쇄 오류였습니다. 공부만 생각하면 잠이 오던 청소년 시절, 공부가 잠 못 이루게 한다는 것도 역설적으로 맞는 말이었습니다. 다수가 이태리 말로 부르는데 알 게 뭡니까? 그래서 인쇄된 대로 그렇게 자신 있게 떠들었던 것이죠.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부끄러운지 10년 전 친구들을 찾아가서 속죄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식이란 이런 것입니다. 엉터리 정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 그 사람에게는 굳건한 지식이 되어버리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그의 지적능력이 형성됩니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인터넷을 보면 남의 것을 카피해서 올려놓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엉터리인지 아닌지, 객관적인 판단인지 아닌지 구별이 없이 괜찮다 싶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마치 자기 것인 양 올립니다.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올리는 것에도 자기가 발견한 위대한 것인 양 올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에서 욕망이 생기고 행동의 동기를 얻습니다. 어느 작가가 멋져 보이면 자신도 작가의 길을 걷고 싶고, 또 그렇게 합니다. 이제는 식상한 옛말이 되었겠지만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를 만들어 내고 돈을 많이 벌어 진정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자 “나도 그렇게 해서 돈을 벌고 명예를 떨치고 싶다.”고 자극을 받는 젊은이들이 적잖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하나의 자극점을 놓고 볼 때 그것의 본질이나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숨겨진 노력을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본 작가가 작품을 써서 일반책보다 배나 비싸게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일본만 아니라 한국, 중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기자회견 때 어느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렇게 높은 가격을 매겨도 잘 팔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까?” 작가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내 책은 언뜻 보면 비싸 보입니다. 그러나 비싸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 읽으면 이해할 수 있지만, 두 번 읽으면 즐길 수 있도록 썼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런 말이 매력적으로 들린 청년은 ‘와, 나도 그런 글을 써서 인기를 끌 수 있는 작가가 되어야지.’라는 야심을 품을 수 있겠지요. 전문가라는 것은 다소 타고난 소양이 있다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 되고, 그 무엇보다 얼마나 갈고 닦고 실력을 쌓았는가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글을 잘 써도 배나 비싸면 사람들은 외면 해버립니다. 그런데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면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극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나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단정해서 뛰어드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나도 열심히 해서 저런 작가가 되도록 해야겠다. 저렇게 되지 않는다 해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열심히 해서 유능한 작가가 되도록 하겠다.’ 이런 것이 아닐까요?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러하지 못하고, 대단한 화가가 되기를 욕망하지만 좌절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두가 거의 하나라고 보여 집니다. 욕망만 크고 노력과 희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희망하는 것을 마음에 가지는 순간, 그 화려한 면을 외면하고 노력하고 희생하는 것을 동행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기는 인내가 요구되고, 내 길이 아닐 때 빨리 포기하고 전환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앞서 말한 것을 다시 언급한다면, 전문가라는 것은 이것저것을 짜깁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것들을 단지 활용할 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하는 분야에서는 그렇게 불릴지 몰라도 우리가 말하는 전문가라는 것은 내가 가진 지식은 노력을 통해서 얻고, 이런 저런 지식들이 통합되어 머릿속에서 자유롭게 나의 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삶은 어떻게 오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볼 때 어떤 눈으로 보고, 나의 삶에 반영해야 할 것인가를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타인을 보는 목적이 무엇이며, 타인을 볼 때 어떤 면을 보아야 할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좋다’는 것을 보고 느끼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좋다’는 것을 창출하는 사람이 되도록 해보세요.

하나님이 진노하셨다 (삼상5: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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