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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미스바의 국가적 기도(삼상7:5~11)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온 백성이 온전히 하나님을 섬겨야 함을 역설하고 기도운동을 전개해나갔습니다. 하나님을 안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상과 겸하여 섬긴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속적인 관점은 다다익선으로 여러 신을 섬기면 많은 신의 도움을 받아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여기지만 신앙은 그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다른 신을 겸하여 섬긴다는 것은 진정한 신앙이 없다는 것과 영혼이 혼잡 되어 있어 욕망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신앙을 소유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신앙은 순수성이 중요한데 그 순수성은 타협적인 것과 대치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 오직 하나님만 섬기게 하기위해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 땅으로 데려다 놓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의지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일가친척을 떠나온 상태이고, 그의 소유의 땅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양 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지는 모든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말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민족을 이루기는 했지만 애굽의 종살이와 광야생활과 사사시대를 거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꾸 주변의 이방 부족들의 삶에 관심을 두고 그들을 따라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유혹을 받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눈에 나타난 것이 좋아 보이고, 남의 것이 더 커 보이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 사람들의 신들을 자신도 섬김으로 그들과 다툼이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 앞으로 온전히 돌아오는 것이 시급한 일이고,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대대적인 기도운동(운동이라는 표현이 좀 이상한 느낌을 주지만 그래도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느낌이 와 닿기 때문에 씁니다.)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도운동이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과 온 백성이 한 마음으로 같이 기도해야 한다는 통일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면 기도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하나님의 제단에 물을 붓고 온 종일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에는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다는 자백과 함께 자신들을 하나님의 손으로 인도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몸은 배가 고팠겠지만 영혼은 강력하게 되고 일치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이런 때가 있어야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은 병력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치러 왔습니다. 굶어서 힘이 빠져 있을 때 시련이 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였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인 것은 자신들을 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올라온 것입니까?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모여 함께 기도하는 것은 괜한 짓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자신들이 허점을 보여 블레셋에게 당하게 되었다고 술렁이며 마음이 흔들렸을 것입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는 백성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멈추지 말고 계속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서 사무엘은 젖 먹는 어린 양을 가져다가 번제로 드리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번제를 드리고 있을 때 블레셋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대항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전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여 전열을 가다듬었습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은 사무엘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블레셋과의 싸움이 시작되려던 때 하늘에서 큰 천둥소리가 울렸고 블레셋 군대들을 혼란 속에 빠졌습니다. 한참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 천둥소리가 어떻게 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강력한 천둥소리를 듣자 마치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는지 블레셋 병사들은 요동쳤고, 전의를 상실해버렸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단을 쌓고 기도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을 것이므로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이고, 이 천둥은 바로 하나님의 역사라고 보았던 것이지요. 참 이상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블레셋 사람들이 더 하나님의 역사에 민감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는 않습니다. 겁낸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다른 의미라는 것이 이런 점입니다. 같은 천둥소리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동치지 않았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전투력을 잃고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승기를 잡은 이스라엘은 더욱 더 기세등등하여 그들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어디까지 추격했느냐 하면 벧갈까지입니다. 정확한 거리는 알 수 없지만 블레셋 영토 쪽으로 상당한 거리를 진격해갔습니다. 그 후 블레셋은 벧갈을 넘어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한 믿음과 기도는 전쟁하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전쟁하기 위한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을 벧갈까지 쫓았습니다. 전열이 흐트러지고 우왕좌왕하는 블레셋을 보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끝까지 쫓지는 않았지만 명확하게 오늘 할 수 있는 최선의 전과를 이룬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과 전쟁에서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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