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제목을 보고 무슨 생각이 떠올랐습니까?
이 표현은 포기일까요? 각오일까요? 타협일까요? 상상일까요? 모두 다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포기나 타협의 말입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 들어보는 동화 중의 하나는 ‘개미와 베짱이’일 것입니다. 개미는 여름에 열심히 일을 해서 겨울을 잘 나는데, 베짱이는 늘 노래만 부르다가 겨울이 되면 굶어 죽는다는 줄거리입니다. 요즈음은 이 이야기를 각색하거나 변형시켜 다르게 만들어보는 경우가 많지만 이솝 이야기에서 말하는 내용은 오늘 현실에 안주하는 베짱이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해 저축해두는 개미를 비교해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가르쳐 주는 내용입니다.
오늘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아무리 빛나는 내일이 있다 할지라도 오늘 하루하루 슬프게 지낸다면 과연 그때까지 살아남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알아야 합니다. 미래가 없는 오늘은 아무리 즐겁다 하더라도 그것은 진정으로 즐거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미래를 갖지 않는 현재는 아무리 즐거워도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을 교훈하는 것이지요. 사실 한국이라는 곳에서 살려면 여러 번의 입학시험과 입사시험을 거쳐 성인이 되고, 가장이 됩니다. 그것만 아니라 한 곳에 머문다 해도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이것으로 끝나면 좋은데 어떤 성취를 위해 달려가야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세상 어디에 산다 해도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강요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일이 잘 안 풀리고, 뭔가 의욕이 떨어질 때 우리의 마음에서 뇌는 소리는 “난 그냥 이렇게 살기로 했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자신에게 퍽 위안이 되는 소리기도 합니다. 그냥 물 흐르듯 살 것이고, 더 이상 욕심도 내지 않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정신적인 고통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오는 스트레스가 주된 요인으로 많이 작용합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는 욕심을 덜 내면 스트레스가 덜할 것이고 괴로움도 줄어들 것이라고 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렇게 마음을 먹고, 하는 일을 그냥 기계적으로 한다 해도 두 가지는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나이가 들어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칩시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듦에 따라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가 문제이고, 다른 사람이 ‘내가 이렇게 살기로 한 것에 대해’그 영역을 깨트리지 않는지가 문제이지요. 주인이 싫어서 그만두라고 하면 그 마음가짐은 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어느 나이까지는 가만히 있어도 자랍니다. 육체도 정신도 말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을 지나면 점점 퇴보되지요. 그렇다고 세상이 나의 상황에 맞춰주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내가 한순간에 머물 때부터 나는 퇴물이 되어간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나는 늙어가고, 세상은 더 좋은 나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바라는 것이 역행을 하기 때문에 그다음에 오는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은 마음을 낮게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뭔가 자신이 나아가는 목적을 정하고 거기에다 삶의 자세를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권하고 싶습니다. 두 사람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한 사람은 프랑스가 낳은 ‘에디뜨 삐아프’라는 샹송 가수의 경우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태생도 잘 모르고 되는 대로 자랐고 살았던 거리의 소녀였습니다. 그녀에게는 노래를 곧잘 하는 소질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서서 노래하면 사람들은 쉽게 동전을 던져 주었고, 그것으로 적당히 되는대로 방탕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어떤 기획사의 사람이 지나가다가 목소리를 듣고 훈련을 시키면 뛰어난 가수가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스카우트를 합니다. 그녀는 그런 정형화된 삶을 싫어했지만 어쨌든 기획사의 훈련 덕분에 세계적인 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씨도 괜찮고 노래 실력도 뛰어났지만, 자신의 거리의 사람으로 살아온 되는대로의 삶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많지 않는 나이에 마약으로 죽습니다. 그녀를 사랑한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도 타락시킨 채 말입니다. 그녀가 늘 외친 말은 “난 이렇게 살기로 했어!”가 아니겠습니까? 반면 ‘노블’이란 영화의 실제주인공 같은 크리스티나 노블은 에디뜨 삐아프와 같이 길거리서 노래하는 아이였고, 불행한 가운데 살았지만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 힘든 아이들을 돌보는 삶을 살기로 하고 베트남 전쟁이 끝난 호치민 시로 가서 어려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합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이렇게 말하겠지요. “나는 이렇게 살기로 했어!”이 두 사람은 양극단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외친 말은 같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을 팽개친 ‘이렇게’였고, 다른 사람은 자신을 포기한 ‘이렇게’였습니다. 좀 더 말한다면, 한 사람은 현실적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상적이었다는 것이고, 또 육신적이고 다른 쪽은 희생적이었다고 대조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내가 나의 인생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끌 목적과 이상을 정하고 의지를 가지고 실현하는 것은 말은 쉽지 실제로는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가?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난 이렇게 살기로 했어!”선언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함께 산다면 분명히 당신의 삶은 아주 좋은 쪽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마음에 그려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외쳐보세요. “난 하나님과 함께 이렇게 살기로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