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을 바라보는 지금 봄을 생각한다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고 조급해 보이기도 합니다. 모든 상황에서의 ‘봄’은 다 희망적이고 약동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영어로 ‘봄’(spring)은 원래 ‘찢어지다.’ ‘솟아오르다.’ ‘튀다’라는 뜻이었고 16세기부터 ‘봄’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간단히 원래의 뜻을 살펴보면 어떻게 그 단어가 발전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 겨우내 얼었던 땅이 갈라져 샘이 솟아나고, 새싹들이 터져 나오는 것을 연상할 수 있지요. 겨울은 겨울대로 멋을 가집니다. 흰 눈이 내려 소복이 쌓인 들판이나 집들의 지붕, 그 위에 소리 없이 내리쬐는 햇살, 아니면 흰 눈발이 날리는 길거리를 총총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풍경은 전형적인 겨울을 연상하게 하지만 그 기간이 길면 이제 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한문에서 봄을 나타내는 춘(春)도 ‘초목이 햇볕을 받아 자라난다.’는 뜻입니다.
언제는 햇볕이 없나요? 겨울에도 햇볕이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의 정서는 햇볕보다는 얼음과 눈바람이 더욱 강하게 느껴집니다. 동양적인 표현은 서양보다는 더 서정적이고, 자연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터져 나온다.’는 표현보다는 ‘자라난다.’로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우리에게 있어 봄은 그럴 수 없이 기다려지고 또 아름답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것 같은 봄, 그러나 겨울 후에 찾아오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릅니다. 새싹이 올라오고, 얼었던 땅이 녹고, 앙상한 가지에 싹이 트고 꽃이 핍니다. 그래서 봄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온 세상을 꽃들의 갖가지 색으로 뒤덮어 놓으니까요.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옷들도 겨울의 어두운색에서 봄의 화사한 색으로 바뀝니다. 어떻게 자연이나 사람이나 다 같이 봄을 기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인생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상황을 봄에다 비유하고, 뭔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잘 되어가기 시작할 때를 봄으로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왕성하게 되는 여름이나 결실을 거두는 가을을 향해 가지만 사실 가장 행복한 때는 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희망이 가득하니까요. 인간이 언제 가장 행복한가를 놓고 연구한 사람들의 똑같은 보고는 ‘사람은 어떤 일을 성취했을 때보다 성취해 나갈 때가 가장 기쁘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봄이지요. 그래서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살고 있으며, 희망을 버린 자를 삶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 두 가지 질문으로 봄의 의미를 점검해 봅시다.
당신은 지금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봄이 오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인생은 지금 어디에 해당된다고 보십니까?
아마 인생으로 보면 10대~30대까지가 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대는 이른 봄, 20대는 중간 봄, 30대는 늦은 봄…, 너무 오랜 기간을 잡았나요? 여기에 해당되는 당사자들은 기간이 너무 길어서 여유가 있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5, 60대를 지난 사람들의 눈에는 그때를 돌이켜 보면 눈 깜박할 시간이었다고 말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심리적인 작용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현재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을 중심으로 보면 길고 지루하며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지난 과거를 돌아보거나 다시 맞을 수 없음을 알았을 때의 과거는 너무 짧고 허무하게 보낸 것에 대한 회한을 갖기 마련입니다. 모든 사람은 봄을 기다리지만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않고, 봄을 좋아하지만 봄을 봄답게 보내지 않습니다. 봄답게 보낸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추수를 결실로 생각한다면 봄에는 고랑을 파고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심지어는 다음 봄에 어떤 싹이 돋아나거나 꽃이 필지 지금 계산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봄을 잘못 보내면 풍요로운 가을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늘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오면 할 일이 있어 봄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성경에서도 봄을 말하는 것을 보면 다분히 그런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 65:10)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이 고백을 하는 사람은 일을 하려는 사람이지, 노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봄을 잘 보낸 사람의 예는 누구일까요?
모두가 잘 아는 다윗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많은 형제 가운데 자랐지만 외롭게 보내었을 것입니다. 밤에 양을 치는 일들을 했음을 여러 번 말한 것을 보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냥 보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이며,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이며, 그런 것을 놓고 시를 짓는 일들을 했을 것이며, 수금을 타면서 노래를 부르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중 어른이 되었을 때 한순간 그것을 잘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봄을 잔인하게 보낸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골리앗을 무찌르고 난 뒤 국민의 영웅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기나긴 세월 동안 도망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인생의 계절은 봄이었지만, 실제의 삶은 겨울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위대한 왕이 된 것은 바로 이 겨울을 잘 보냈고, 봄을 기다리며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는 겨울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봄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아마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봄을 맞이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어쩌면 다윗 자신은 “그렇지 않아, 나의 봄은 잔인했어.” 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맞이한 봄은 누구보다 빨랐습니다만 진짜 맞이한 봄은 30세로 일반적으로는 늦었지만,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후 맞은 봄은 너무나 확실했고 아름다웠습니다.
세월의 봄은 오라고 하지 않아도 옵니다.
그러나 그 봄을 맞이하려면 겨울을 견뎌내야 합니다.
인생의 봄은 기다리는 자에게 옵니다.
어떻게 기다리느냐 하는 것에 따라 봄이 각자 다르게 다가옵니다.
제아무리 봄이 와도 진정한 봄을 누리는 자는 봄을 즐기는 자라기보다
봄에 일하는 자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야속하게도 하나님은 눈으로 보는 환경에 젖어 살면
자연환경처럼 살게 되고, 역설적으로 눈으로 보는 환경을 더 잘할 수 있는 기반으로 삼으면 진짜 숨겨진 계절들의 보화를 얻게 하십니다.
그래서 항상 눈에 보이는 것을 섬기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