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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두 번째 걸음 – 포기하긴 일러

“시작이 반이다.”라는 격언이 있듯이 생을 살아보면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이 격언도 마찬가지지요? 중국의 태산이 그렇게 높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늘 아래 있는 산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오르기만 하고, 계속 오르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르지 않고 “높아서…”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결코 오를 수 없지요. 그러므로 태산 앞으로 가서 한 발을 내디딘다는 것은 그처럼 중요합니다.

2월입니다. 새해 시작하면서 우리는 첫발에 대해 생각하고 그 중요성을 되새기며 의미 있게 디뎠습니다. 그 시작한 일이 잘되어 가는지요? 벌써 기가죽고 포기상태에 다다르지는 않았는지요? “내가 뭘 잘할 수 있다고. 그냥 내 식으로 살 거야.” 마음속으로 이렇게 옛날로 돌아가서 주변이 이끄는 대로 살려는 습관이 나오고 있지 않은지요? 먼저 더 발전된 삶이란 뭔가 깨트려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런 무리 없이 발전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 발전에 주체가 될 수 없고, 발전에 묻혀갈 뿐입니다. 자신도 그 발전에 속해있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발전의 대가를 자신의 것으로 차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새해 다짐했던 것을 새롭게 정비해서 한 번 더 전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싶습니다. “희망은 당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희망을 버리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생각해보세요. 일이 우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을 버리는 것입니다. 일이란 인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격이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거나 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니체라는 철학자는 “초인이 되라.”고 강조했지요? ‘초인’이란 보통 인간보다 초월하는 인간 즉 슈퍼맨이 되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영화에 나오는 슈퍼맨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주어진 환경이나 자기가 판단하는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기보다는 순응하려는 태도를 잘 보입니다. 니체의 눈에서는 이런 것은 환경의 노예일 뿐이고, 이래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정반대의 말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버트런드 러셀인데,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다르기 때문에 딱 잘라 반대가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주장을 들어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삶을 즐기게 된 주된 비결을 자신에 대한 집착을 줄였다는 데 있다.” “나는 스스로 자신과 자신의 결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법을 배워나갔다.” 이 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함으로 행복해졌다는 말입니다. 러셀의 말도 맞지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다 할 수 없고,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도 없지요. 어차피 취사선택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이것이 분명치 않습니다. 버려야 할 것도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잡아야 할 것도 의문하며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입니다. 사실 우리가 생을 살면서 무엇에 집중하는 것보다 망설이는 시간이 훨씬 많을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정리하면 이렇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의 모든 훌륭한 것은 하지 않고서는 되는 일이 없고, 현재를 깨트리지 않으면 더 나은 미래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취사선택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2월이니, 어느덧 1월 한 달 지나온 나날들에 익숙해져 있겠죠.

당신이 “왜 나는 이 모양으로 살지?”라든가, “왜 되는 일이 없지?” “출신을 바꿀 수 없어.”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당신의 눈은 미래보다는 과거, 희망보다는 처지에 매달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것을 깨트려야 하는데, 한꺼번에 안 되면 조금씩, 조금씩 계속 깨트려 나가야 합니다. 마치 망치로 물건을 깨트리려고 할 때 한두 번 두들기면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것도 계속 두들기면 조금씩 금이 가 결국 깨트려지는 것처럼 나의 게으름, 무지, 고정관념, 버릇 등을 깨트려야 합니다.

이제 2월이니 포기하기 이르죠.

곧 봄이 와 나른해지리라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지금의 겨울은 마지막입니다. 옷깃을 여미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열심을 낸다면 바람마저 시원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열심을 낸 만큼 나에게 보상이 됩니다. 놀고 빈둥거린 만큼 좋은 일은 생기지 않죠. 하나님도 성실한 사람을 기쁘게 사용하십니다. 신앙을 가지면 마치 하나님이 다 해주시는 것처럼 여겨 덜 고생해도 하나님이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을 기대합니다만(이것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개하는 훌륭한 사람들 중에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보셨는지요?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시31:23). (여기 ‘진실’이라는 표현은 우리 방식으로 ‘진실’과 ‘성실’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내가 게으르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성실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실 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은혜는 우리의 성실함 그 이상으로 주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요.

자, 이제 또 한 번 기도하고, 또 한 번 믿음으로 굳게 서서 나가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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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모든 것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