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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칭찬, 삶을 이끄는 최고의 비법

몇 년 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고, 항간에 인기 있는 언어표현으로 지적된 적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이 아무리 맞는 말이라고 해도 식상해지고, 그리고 잊혀 집니다. 새삼스럽게 ‘칭찬’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주 전 TV 뉴스에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를 조사해 본 결과 ‘칭찬’과 ‘감사’였다는 결과가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토록 우리 모두가 칭찬을 좋아합니다. 그토록 칭찬을 갈구하면서도 정작 칭찬하는 일은 잘 안 되는 것이 또한 우리이기도 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내용은 씨월드라는 해양 동물 전시관에 가면 3톤이나 되는 범고래가 그 육중한 몸을 가지고 어떻게 묘기를 펼쳐 보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우화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조련사가 ‘고래반응’이라 불리는 범고래 훈련법으로 훈련을 시켰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칭찬’이었습니다. 범고래가 쇼를 멋지게 해냈을 때 즉각적으로 칭찬을 하고, 실수를 했을 때는 질책하는 대신에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면서 지속적으로 격려를 해서 이끌어 간다는 스토리입니다. 그래서 범고래도 이렇게 멋지게 쇼를 펼칠 수 있다면 인간은 더더욱 그렇지 않겠느냐고 강조합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잘한 일에 초점을 맞추어 긍정적인 것을 강조하고, 벌을 주지 말고 시간을 주라고 조언합니다.

실제 우리를 움직이는 타인의 영향은 명령이나 책임부여보다는 기분에 의한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논리를 강조하지만 실제 행동의 결정은 감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고요. 따라서 기분 좋은 말이 상대를 움직인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칭찬’이라는 것입니다. “칭찬할 것이 있어야 칭찬하지”라는 생각이 불쑥 떠오를지 모릅니다.

실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 생각도 나지 않습니까? “칭찬해주면 정말 자신이 잘난 줄 알고 착각하고 설칠거야.” 이런 생각이 들면 상대방을 칭찬하지 못합니다. 또 자식일 경우 더 잘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앞서면 칭찬이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욕심이 나서 항상 미흡해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의 내용은 긍정적인 측면을 보라고 말합니다. 즉 잘한 일에 초점을 맞추라는 말입니다. “잘한 일이 없어”라고 말한다면 그쪽보다 당신이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잘한 것을 보지 못하거나 자기 기준에 매여 그렇게 말하게 되는 것이지요.

나 자신도 보면 칭찬에 그리 후한 사람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항상 일을 해야 한다는 쪽에 시각을 두고 있고, 더 잘하기를 바라는 쪽이며, 나의 표현이 정직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히다 보니 아무래도 그런 상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반면 나의 삶을 돌이켜 보면 칭찬이 얼마나 내 삶에 큰 도움이 됐는지 모릅니다. “넌 영어를 잘하네”하는 말을 듣고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넌 잘 생겼어”하는 말에 그런 줄 알았고, 잘 생긴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행동하려 했습니다. 때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있지만 다른 사람이 과소평가하는 말에 짓눌려 정말 그런 재주가 없나보다 여길 때도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스스로의 평가보다는 타인의 평가에 더욱 귀 기울이고, 또 거기에 영향을 받습니다. 타인의 평가가 바로 평가기준이 되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자기 스스로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좋고,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으면 상당한 발전이 일어납니다. 또 반대로 상대방을 칭찬하는 것을 잘하면 아주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남을 높인다고 상대적으로 내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고,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주라 그러면 받게 된다.’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상대방은 높이면 상대방도 나를 높이고, 상대방을 좋게 보면 상대방도 나를 좋게 보게 된다는 것은 진리와 같습니다.

종종 ‘인간은 어린아이 같은 심정을 다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운동을 하는데 운동 중에 내가 공을 잘 쳤을 때 뒤에서 집사님이 “나이스”하고 외칩니다. 아들 같은 집사님이 하는 말이지만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잘 쳤을 때 그 말을 안 하면 어떻게 될까요? 별 재미가 없습니다. 운동 상대자인 코치가 내가 공을 잘 쳤을 때 박수를 치거나 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그러면 나도 몰래 씩 웃으며 흐뭇해집니다. 그쪽은 내 아들보다 어립니다. 아마 내가 운동하러 가는 이유는 이 기분을 느끼러 가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런 반응을 보입니다. 아마 누가 나를 이용하기 위해 칭찬하면 따지지도 않고 춤을 출 것 같습니다. 나를 칭찬하는 상대방이 당연히 좋게 보입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자녀를 좋아지게 하려면 칭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무조건 칭찬하라는 말이 아니라 좋은 면을 보고 그것을 칭찬하라는 것이고, 그 칭찬을 기초로 해서 교육하라는 것이며, 칭찬할 것을 보는 넓은 마음의 시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또 당신이 사람과의 관계를 갖거나 사업상 거래를 할 때 칭찬할 것을 찾아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좋게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말해보세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칭찬하는 것이 바로 예배이며, 찬양과 경배입니다. 또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큰 은혜의 자리로 나가게 됩니다.

성경은 “칭찬받는 사람이 되라”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도록 행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묘하게도 타인을 칭찬하라는 말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관계를 위한 글이 아니라 신앙의 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칭찬받는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칭찬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 칭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칭찬으로 인간관계를 세워나가는 실행이 필요합니다. 수년 전 “칭찬 릴레이”라는 TV프로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한 호응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칭찬이 식상한 것입니다. 칭찬이 보편화 되면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고, 재미가 없어져 버리지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내가 칭찬을 비밀스럽게 말하는 것입니다.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칭찬을 하면 인간관계가 좋아집니다.

하나님께 칭찬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엄청난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당신이 상대를 칭찬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다면, 그것은 더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세계가 달라집니다.

3월의 점검

수요2부 예배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는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