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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고난에 답하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 신앙이 좋고 착한 분이었는데 왜 병에 걸려 내가 10대 가장 필요할 때 돌아가셨는지.. 과연 하나님이 살아있다면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럴 수 없고, 그렇게 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런 회의와 비난적인 말을 듣는다면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경우는 우리 보편적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관에 대한 관념의 틀에 박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 관념이라고? 일반적으로는 ‘신은 착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를 심판한다.’는 관념을 말합니다. 또 이렇게 되어야 정상인 것으로 강조합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착한 자에게 복을 주지 않고, 악한 자가 복 받은 삶을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곧 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논리를 갖습니다. 여기서 이기적으로 발전하면 “내가 조금 잘못해도 복을 줄 줄 알아야 진짜 좋은 신이다.”는 것이겠지요? 사실 우리 주변에 정말 안타깝게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하며 그로 인해 그의 가족이나 주변에 깊은 상실감과 상처를 안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한 당사자들은 충격과 혼동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악인이 형통하고 기세등등하며, 그들이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놀리는 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 신앙인들마저 이런 난국에 처할 때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잘 섬긴 사람들, 특히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렸던 사람들 가운데 어려움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권선징악은 신앙의 절대적 교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따라서 복과 심판이 다 그로부터 나옵니다. 이 또 무슨 헷갈리는 소리냐고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지 어떻게 해야만 하나님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 또 우리가 생각하는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일단 고통을 당하게 되면, 그럴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이나 저주라고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당하는 우리 자신이나 주변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수 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이해 안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뜻을 두고 계신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생을 이 땅에서만 국한시키기 때문에 더욱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세, 즉 천국을 생각한다면 이 땅에만이 아니라 천국에서 이루실 뜻도 감안할 여지가 생기겠지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설명해주시고 설득시켜 주시면 좋겠지만 그것 또한 믿음으로 수용하고, 깨닫고, 순종하게 합니다. (이쯤에서 비위가 틀어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을 갖는다면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은 어린 시절 골리앗을 이김으로 나라를 구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 왕에게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질투를 받아 10년이나 넘는 세월을 도망자로 이 광야, 저 광야를 옮겨 다니면서 생명을 부지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왜 그런 고통을 허락하셨을까요? 신약에 와서 바울이라는 사람을 보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느 누구도 받지 못한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확신과 논리를 갖게 하셨습니다. 그는 감동에 넘쳐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주 힘든 일이었지요. 그런데 더욱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육신의 병이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병이 걸렸으면 집에서 요양해서 병에서 회복된 후 복음을 전해도 늦지 않다.”고 할 것이지만 그는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를 낫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고군분투하게 하시며, 신음하면서도 감동에 못 이겨 살게 하셨을까요? 바울도 꽤나 혼란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수없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사람들 보기에도 좋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으로부터 얻은 답변은 “내가 준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것이었고, 그는 “약하므로 주님께 의지하여 더욱 강한 것이 나온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누구나 고난을 당하지만 당하는 고난의 성질이 다르듯이 각자 고난의 목적이 다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난에 대한 하나님 앞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이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내가 이 고난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고난을 오히려 어떻게 이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등등의 질문을 던지고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의미를 알고, 처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고난에도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인생의 목적이 생기고, 그 목적을 알게 되면 고난을 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고난을 나 혼자의 힘으로 짊어지고 가기 힘들므로 주님을 통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면서 고난의 골짜기를 건너가야 합니다. 그 골짜기에서 정상으로 순간 비약해서 올리실 수 있는 하나님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는 골짜기는 상당히 멋지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에 대한 답은 원천적으로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네가 어떤 시각으로 고난을 보느냐, 그래서 어떻게 행동으로 옮기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것인가를 말씀하시지요. 하나님을 믿으면 이 땅에서 복을 받는다고만 말하는 것은 너무 저등한 표현이지 아닐까요?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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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섬기는데 왜 고통을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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