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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역행하는 은혜

역행하는 은혜

어느 책에서 연구한 통계를 발표했는데, 전체의 자산의 총액은 상위 20%가 80%를 소유하고 나머지 80%가 20%를 나누어 가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통계를 조사해서 분석한 것이기 때문에 조작하지 않았다면 맞는 말이라고 받아들여야겠지요. 이런 말을 들으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세상에는 모순이라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자신이 수혜자일 때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다가,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면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통계는 어떤가요? 예금이 있고 자가용까지 있으면 상위 7%에 해당되고,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고 합니다. 또 세계 인구의 15%는 비만에 시달리고 25%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것 등을 제시하면서 우리는 행복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반문도 합니다. 이런 통계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인간의 행복은 거의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기준을 가진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동네 사람 모두가 배가 고프다면 나의 배고픔을 불행으로 규정짓지는 않을 것입니다. 연결되는 생각으로, 우리나라만 지금 코로나를 겪고 있다면 너무 불행하게 여겨지겠지요. 우리가 그런대로 잘 참고 견디는 것은 세계가 다 같이 이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통계를 소개하는데, 기아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돈보다 무기를 생산하거나 병력을 늘이는 데 75배나 많은 돈을 쏟아 붓는다고 지적합니다. 그런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 생각되는데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런 구조가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은 욕망에 차 있고, 자기가치를 어떻게 하든지 드러내려하고, 그런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라도, 온갖 합리화하는 변명을 늘어놓고서라도 그 욕망을 이룹니다. 예수님이 낮고 천한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보편적인 사고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어느 영웅도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떤 임금이나 권력자도 자기 백성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을뿐더러 백성 자신들조차도 그렇게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행하신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누가 자기를 비어 종의 모습이 되고, 누가 자기를 대속물로 드려 백성들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이 사실을 믿고 감격하게 된 우리는 크나큰 은혜의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이고요. 우리가 주님의 마음으로 산다면 이것이야 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사무엘의 분노(삼상13:10-14)

사무엘의 분노(삼상13:10-14)

덩달이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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