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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사무엘의 분노(삼상13:10-14)

사무엘의 분노(삼상13:10-14)

블레셋과의 일전을 앞두고 사울 왕은 다급해졌습니다. 백성들은 블레셋의 막강한 병력 앞에 겁을 먹고 이탈하기 시작했고, 있는 군사마저 사기가 땅에 떨어져 숨기에 바빠하는 모습을 보면서 번제와 화목제물을 가지고 오라고 하여 자신이 집전해서 하나님께 제사예식을 거행했습니다. 더 설명하지 않아도 사울이 왜 그렇게 했는지는 상상이 갈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여주면서 마음을 다시 한데 모아 전쟁을 이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울 자신은 제사장이 아니었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직책 자체는 왕으로서 제사장과 선지자 직을 함께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당시 사무엘이라는 대표적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와서 제사를 집전해야 했지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사무엘이 늙어서 행보가 느렸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지 누가 드리는 것은 차후의 문제라고 본 것 같습니다. 제사를 마치자 사무엘 제사장이 당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태를 알아챈 사무엘이 “왕이 무엇을 행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사울 왕은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합니다. 어떤 설명이었을까요? 성경을 보면 확인되지만 전쟁을 치르기 전에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이 났고, 그래서 사무엘을 불렀으나 사무엘이 빨리 당도하지 않고 긴박한 상황이 닥쳐오니까 제사를 먼저 드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여 부득이 하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무엘 제사장은 사울 왕을 향해 화를 터트립니다. “왕이 망령되이 행했습니다. 하나님이 왕에게 내린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왕께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으면 왕위가 영원했을 터인데 그것을 어김으로 하나님은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실 것입니다.” 엄청난 선포가 떨어집니다. 이 내용은 성도로서 이 설교를 한 번 이상 듣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내용을 조용히 여러 가지의 입장에서 묵상을 해봤는지요? 이 내용은 극적이기도 하고, 심각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각에서는 사울의 입장이 이해가 더 가기도 하고, 사무엘이 너무 엄격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신이 늦게 온 것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고 사울이 성급하고 무례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책망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이 내용은 수많은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면상 이것만큼은 마음에 새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교훈은, 세상 일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하나님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이런 일을 당하면 그런 점에 마음으로 시험을 받습니다. 정말 사무엘이 안 오고 블레셋이 쳐들어와 전쟁에 임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냥 전쟁하는 것보다는 사울이 왕이니까 왕이 대신 제사를 드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이 오기 전까지 블레셋이 쳐들어오지 않도록 그들을 붙잡아 두실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도 없겠지요? 또 ‘이 하나의 사건이 그리 큰일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반응에서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일까요?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왕정국가가 아니라 신정국가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데 사울 왕은 자신의 결정을 따라 행했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을 두고 사무엘은 ‘망령된 행동’ 즉 ‘심히 미련한 행동’을 했다고 질책한 것입니다. 모든 결정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결정이라도 상황이 어울리지 않으면 빛을 잃거나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판단의 영역입니다. 성경에서는 ‘어떤 상황도 하나님의 뜻을 능가할 수 없다.’입니다. 따라서 사울은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했고, 사무엘 제사장을 기다려 그 뜻을 확인하고 은혜를 구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울은 이미 자신이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요. “내가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니 안 드린 자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그러니 은혜 베푸셔서 블레셋을 이기게 해 주옵소서.” 그의 마음에는 블레셋도 이기고, 사무엘 제사장의 권위도 이기고, 자신의 왕국으로 삼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실수를 잘 합니다. 사울처럼 자기 합리화도 잘 하고요. 진정한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내세우고 그것을 관철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억지가 되고 하나님을 무시한 처사가 됩니다. 자신을 위해 하나님이 존재해야 하고, 적당한 헌신이 하나님의 협조를 끌어낸다고 단정합니다. 자신이 왕이 되고 싶은 자들은 이 내용을 잘 봐야 할 것입니다. 또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고 싶은 자도 이 내용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왜 고통을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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