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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불안과 혼동

불안과 혼동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이전에는 경험하지 않았던 것들, 상상하지 못한 것들을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비대면을 권고합니다.”라는 말은 ‘비대면해야 한다는 말인지, 우리는 권고를 했으니까 알아서 하라는 말인지’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그 말을 이해는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 ‘조용한 전파가 아니라 조용한 불안’이 찾아옵니다. 등교를 하는데 격일제로 하거나 거리를 띄어 앉게 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게 하는 것은 단순한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몇 사람이 아닌 국가 전체가 긴장하고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현실에서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의미도 모르는 충격만 남게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왜 질질 끌어가고 있는 것일까? 정말 코로나가 문제라면 하루 속히 어떻게 해서든지 끊도록 해야지, 왜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 것일까?” 이런 경우에는 작은 단위일수록 통제가 잘 되지만 사람의 수가 많으면 통제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보다는 미국이 통제가 어려운 이유가 다 그런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통제를 잘 할 수 있는 단위는 ‘자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가장 쉬울 것 같으나 또한 가장 어려운 대상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회 안에서 살다보니 다른 사람과 동떨어져 살 수 없다는 본능이 있어 내가 나 자신을 통제할 때 다른 사람이 안하면 손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기고 자신을 통제하는 사람은 정말 훌륭한 인격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한 흑인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흑인사회는 불만을 터트리고 길거리로 나섰고 이것이 들불처럼 번져 온 미국이 시위현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코로나로 답답하고 괴로웠는데 하나의 사건이(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지만. 정말이지 인종차별은 안 됩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분출구처럼 된 것 같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망자를 추모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곧 한국에서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마치 ‘코로나 화산’ 같습니다. 세상의 정치, 사회의 지형이 어떻게 바뀔까요? 이런 과정을 거쳐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경우도 우리는 역사 안에서 보아왔습니다. 나는 이렇게 기도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이왕 이렇게 견뎌왔는데 코로나에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기는 방법은 누누이 방송을 통해 듣고 있는 대로 전파를 막고, 자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힘들게 와놓고 몇 사람의 부주의나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허사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마음을 합쳐서 코로나의 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참고 있는 마음을 분출하거나 폭발시킬 것이 아니라 해소하고 삭이는 일입니다. ‘삭인다.’는 말을 피해보는 것처럼 여기지 마세요. 인생을 살면서 삭이는 것이 결국 승리할 때가 많습니다. 무릇 자기 마음을 지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반발심으로 나타날 때가 대다수입니다. 나의 평안을 추구하거나 나의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상대에게 분풀이해야 하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되레 자기를 힘들게 하는 일입니다. 또 한 가지 더, 왜 우리가 이런 시국에 예배를 대면으로 해서 드려야 하는가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코로나의 침투를 막을 수 있는지를 압니다. 그 준수사항들을 철저히 지키면 감염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감염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하나의 방식을 택하느라 또 다른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림으로 우리 마음의 모든 무거운 짐을 해소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함으로 이 재난을 극복해야 합니다. 영혼이 병들고 무기력해지면 육신의 삶을 결코 행복할 수 없고 삶 자체가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보다는 ‘코로나를 이기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서 우리 삶을 세워야 한다’로 전환해야 한다고 봅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합니다!

율법주의자가 될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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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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