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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머리카락

머리카락

머리카락이 성성한 사람에게 한 아이는 말했다. “아저씨는 머리카락이 많아서 좋겠어요.” 그 남자는 처음 들어본 말이라 의아해 하면서 “내가 머리카락이 많다는 걸 처음 듣네.” 그러면서 아이를 보자 그 아이는 빵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 얘가 항암치료를 받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 눈에는 머리가 듬성듬성한 사람의 머리마저도 부러운 것이었고, 아저씨는 머리가 무성한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이 머리가 없다고 본 것이다.   당연한 것이 사라지면 그 자체의 소중함을 그때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적은 것에 늘 불만이던 사람이 더 없어 자기를 부러워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마음이 허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반대로 새삼스레 내가 가진 작은 것에 있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 행복감이 찾아온다.   우리 마음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욕망을 이루지 못해 슬퍼하는 것이다. 없어도 그만인 것을. 만약 헛된 욕망을 제거하면 우리가 실제 필요로 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내가 중형차를 가지지 못하고 소형차를 타고 있다고 목적지에 못 가는 것이 아니다. 비록 소형차마저 가지고 있지 않아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도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우리 집에 TV가 두 대가 없다고 불평할 것도 없다. 한 대로도 살 수 있다. 불편하다고?  꼭 원하는 프로그램을 보고자 하니 못 보는 것에 불편한 것이다. TV가 없으면 책을 보면 된다.  단지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TV에 매달리는 것이다. TV가 없으면 산책을 하거나 뭔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욕망이 한 곳에 집착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아진 것이다.  결국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자 하는 욕망을 채우지 못함에 괴로워하고 불행하기 여기고, 슬퍼지는 것이다.   윌 듀런트라는 미국의 철학자가 어느 날 한 남자가 자살하기 전에 자신을 찾아와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선생님의 답을 듣고자 한다.”고 했을 때 오랜 세월 동안 철학서를 써 왔고, 가르쳐 왔던 그가 확실한 답을 못하고 어물거렸다.  그 사람은 별 해답을 얻지 못했다는 듯이 떠났고, 듀런트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떻게 이 문제에 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그의 명성은 20세기에 널리 알려진 터라 전 세계 유명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각자에게 답을 구한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각계의 유명인들이 보낸 답장을 모았다.  정답은 없었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는 것!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변화할 뿐이지 진정한 발전은 없다는 염세적인 표현과 함께 이 표현 자체가 답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므로 변화된 많은 것들을 얻으므로 삶의 의미를 찾거나 행복감을 느끼려고 하는 것보다는 본질과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남보다 못한 것에 불행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죽는다는 것.  우리 모두는 죽는다!  그러나 너무 당연한 그것을 망각하고 오늘 사는 데 집중한다.  우리는 죽음을 고통스럽게 바라본다.  그러나 죽은 자들은 산 자들을 얼마나 안타깝게 바라볼까? ‘굳이 그렇게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는데...’   한번 생각해보라. 우리가 불행했다는 그때를!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날이 있을까?  삶에서 가장 좋지 않은 날을 골라 그것이 왜 좋지 않은지를 말하려 해도, 그것 자체를 자세히 보면 중요하지 않은 날이 아니라 오히려 더 중요한 날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을 만큼 시키는 노력을 해보라. 그러나 그 욕망에 정신을 뺏기지 말고 본질을 붙들어라.  그리고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허영이 아닌지를 생각해보고 쓸데없는 껍데기를 제거하라. 그리고 기도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라. 그 모든 것이 소중한 것이다.

자신에 대한 회상(삼상12:1-5)

자신에 대한 회상(삼상12:1-5)

백성이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다(삼상1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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