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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백성이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다(삼상11:12-15)

백성이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다(삼상11:12-15)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사울의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암몬 족속과의 전쟁이 일어났고 이것은 위기이자 곧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암몬족속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볼모로 잡고 위협하는 것에 적극적인 대응을 했습니다. 정면 항전인데 여기에 가담하지 않는 지파는 죽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울의 행동은 위협을 느끼기도 했지만 싸워야 한다는 단결심과 용기를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나하스가 이끄는 암몬족속은 이스라엘 한 성을 점령했고, 자신의 민족을 돕기 위해 이스라엘 지파들이 달려온다 해도 점심이 돼서야 올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는 새벽 곤히 잠든 시간에 당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곧장 적진 한가운데로 돌진했고 자신들이 강자라고 자부하며 내일을 위해 잠에 빠져 있던 그들을 덮친 것입니다. 전투가 얼마나 진행되었을까요? “날이 더울 때까지”라고 했습니다.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죽을 줄 알았으나 살았고, 그것도 자신들을 죽이려 한 자들을 물리쳐 승리하는 기쁨, 땀의 결실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말로 정말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고 감격이 벅차올랐을 것입니다. 승리에 들뜬 사람들이 사무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고 말한 자들이 누굽니까? 우리가 이 자리에서 죽이겠습니다!” 이런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리자 사울은 그들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구원의 날입니다. 따라서 형제 중 아무도 해하여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 길갈로 가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하나님 앞에 화목제를 드립시다!”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며 그렇게 행했습니다. 용기백배와 무한한 감격을 누렸습니다.

왜 길갈로 갔을까요? 길르앗 야베스에서 가까운 곳이 아니고 가다가 기운이 빠져 하고자 했던 행사가 시시하게 되지 않을까요? 거리가 60km 정도 되고 군사는 33만이었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최고의 상징적인 곳이었습니다. 200여년 전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시작했을 때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고 기념비를 세웠던 곳입니다. 그 후 ‘하나님은 항상 도우시는 분’이시라는 신앙개념이 세워졌습니다.

왜 화목제를 드렸을까요? 이름 그대로 ‘평화의 제사’입니다. 감사와 화목의 제사이기도 한데,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을 바쳐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고 인간의 화목을 얻으려는 제사입니다. (이스라엘이 드리는 제사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등)

드디어 이스라엘은 한 왕국으로 출발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왕을 뽑게 해달라고 요구한 데서부터 시작하여 왕을 세우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려를 하시는데도 졸라댔고, 막상 왕을 정해주니까 미덥지 않고, 또 그를 멸시하거나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묘한 시간들이 흘러갔습니다만 당시 주변국 중에 가장 막강한 암몬의 나하스가 공격해 와서 완전굴복을 요구함으로 어느 누구든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 때 사울이 강력하게 등장했습니다. 시련은 삶을 재편합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동양의 말이 있듯이 결국 이스라엘이 그렇게 된 셈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처음에 기름 부은 사무엘이나 부음을 받은 사울의 입장에서는 난처했을 것입니다. 백성들의 호응도가 크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암몬이 쳐들어오는 위기를 맞음으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예기치 않은 위기가 닥칠 때가 많습니다. 갑자기 병에 걸린다거나 사업에 실패하는 경우,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치는 경우, 지금처럼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는 것, 이 모두 시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 안에서는 새로운 역사가 펼쳐집니다. 문제는 믿음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로 드리느냐, 마느냐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왕이 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진정한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겁났다면 도망가거나 숨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린다는 것은 그 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울에게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의 관용입니다.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암몬 군대를 이기자 사울이 왕이 아니라고 한 자가 누구인지, 그 자들을 색출해서 죽여야 한다는 충성어린 선동에 사울은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날이므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만류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것입니다. 사면이기도 하고 용서이기도 했습니다. 왜 중요한가 하면 그가 나중에 왕좌를 굳혔을 때는 볼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왕이 되기 전에 성경에 언급된 대로 겸손했던 것일까요? 기만이었을까요? 두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그가 시련에서 이스라엘을 구해내는 전투를 이끌었다는 것, 그리고 반대자들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의 구원의 날을 더럽힐 수 없다고 하며 만류했다는 것은 그가 왕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경이 보여주는 것은 전혀 거리가 먼 것은 아니지만, 사울의 용맹이나 사람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사울이 고백했듯이 하나님이 오늘 구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 자신을 드릴 때 역사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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