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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암몬과 전쟁에서 승리하다(삼상11:1-11)

암몬과 전쟁에서 승리하다(삼상11:1-11)

사울은 왕이 되었지만 중앙 집권을 하거나 왕궁을 지어 다스리지를 못하고 아직은 자기 집을 중심으로 해서 상징적인 존재로 지냈습니다. 이제 사울이 왕으로서 실권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늘 그렇지만 기회는 시련과 함께 옵니다.

요단강 동편의 민족인 암몬이 이스라엘을 향해 쳐들어왔습니다. 그곳은 이스라엘 갓 지파의 땅 길르앗 야베스 성이었습니다. 나하스라는 왕이 군대를 이끌고 야베스 성 주변에 포진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야베스 사람들은 전쟁에서 이길 공산이 없어 항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용사들을 보내서 성 밖에 진치고 있는 나하스에게 항복의사를 밝히고 종이 되겠다고 고개를 숙이면서 조약을 맺자고 했습니다. 피해를 줄이고 뭔가 살아날 계획을 구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야베스 성 사람들이 힘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하스는 조약이라는 말에 기분이 상해 큰소리칩니다. “뭐, 조약을 맺자고? 너희의 오른 눈을 빼면 조약을 맺겠다. 그것으로 온 이스라엘의 치욕거리로 삼을 것이다!” 나하스의 욕심은 전쟁을 통한 피해를 조금도 보지 않고 고스란히 이스라엘을 삼키는 것이었으므로 야베스 사람들에게 무조건 항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그 사람을 삼키고,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부르면서 스스로를 사망으로 끌고 갑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욕망의 통제입니다. 통제란 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하고 이상적으로 분출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야베스의 지도자들은 나하스에게 굴욕적인 간청을 다시 했습니다. 마지막 계략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전역 장로들에게 전령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면 당신이 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이 말은 당신이 이끌고 온 암몬 전체와 야베스와의 싸움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말이 아닐까요? 어쨌든 그들은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이 연합해서 돕지 않으면 눈이 뽑혀 노예가 될 신세에 놓였습니다. 나하스 왕이 자신만만해서 그것을 허용했는지, 아니면 야베스 지도자들이 이런 저런 말을 하면서 시간을 지연시켰는지는 모르지만 야베스의 전령들은 사울이 사는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성에 와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기브아 성 백성들은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암몬의 공격을 막지 못하면 비참한 신세가 되는 것이 뻔한 일이고, 또 나하스가 이끄는 암몬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밭일을 마치고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 통곡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웁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마침 와 있던 야베스 성의 전령들이 자신이 당한 일을 말했습니다. 사울이 그 말을 들었을 때 성령이 그 안에 크게 역사해서 ‘이런 불의한 일이 있나!’ 하며 속에서 의분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은 사람에게 분을 내게 합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화를 잘 내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죄악에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점잖은 일도 아닙니다. 의를 굳게 세우는 것에는 의분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그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밭을 갈던 소 한 쌍을 끌어다 잡아 토막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전령들에게 주며 “이 소의 토막을 가지고 각 지파에게 가서 이렇게 외치세요. “누구든지 사울과 사무엘을 따라 전쟁에 나서지 않으면 그들의 소도 이렇게 될 것이오.”” 이 지시를 받은 전령들은 소의 토막을 가지고 각 지파에 가서 전했습니다. 백성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여기서 당신이 보아야 하는 것은 사울이 먼저 희생을 보인 것과 담대함,
하나님의 뜻을 앞세운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것과 사무엘을 언급하면서
나와 그를 따르라고 한 것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다 같이 감동받은 것입니다. 말이나 외치는 소리만으로는 백성을 이끌 수 없습니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공감을 얻고 타당한 말로 솔선 할 때 백성들은 행동의 당위성을 보고 희생에 동참하고자 하는 의지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울은 암몬을 치러 갈 백성들을 세겜의 북동쪽에 있는 베섹 들판에 모이게 했습니다. 백성들은 모였습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래 처음으로 전 지파가 모이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집결한 백성들의 수는 30만명이었고, 유다지파 사람들이 3만명이었습니다. 이제 전령들을 자기 성으로 돌려보내면서 이렇게 전하도록 했습니다. “내일 정오까지 당신들을 구하러 가겠소.” 전령들은 기뻐하며 돌아가 이 소식을 전했고 그 소식을 들은 야베스 사람들은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계략을 썼습니다. ‘항복’이었지요. “우리가 내일 당신 앞에 나가 항복하겠습니다. 그때 당신이 좋을 대로 하십시오.” 마치 항복하기 전 마음 먹을 시간을 달라는 말로 들렸을 것입니다. 암몬 왕 나하스는 흐뭇한 마음으로 내일까지는 서둘지 않고 자진해서 항복해서 나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승자의 여유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울은 병력을 움직이고 있었고, 베섹에서 행군하여 새벽에 야베스 성 근처에 당도한 것입니다. 전날 저녁 나하스와 그의 군사들은 내일 있을 항복과 승리를 그리면서 승리축하파티를 벌였을 것이고, 술이 취해 단잠에 빠져들었을 것입니다. 그때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들이닥친 것입니다. 암몬 군사들은 놀라 잠에서 깨어 전투를 벌였지만 전쟁을 하겠다고 온 사람들과 자다 일어나 황급히 전투하는 사람의 태도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정오까지 전투가 이어졌고 수많은 암몬 사상자들이 나왔습니다. 암몬 사람들은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사라졌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었음에도 그 어떤 대우를 받지 못하고 심지어 힘 있는 자들에게는 놀림감이었으나 암몬이 쳐들어 온 것은 그의 책임을 일깨워주는 일이었고, 그는 분개하고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생업수단인 소를 죽여 토막을 내었고, 그것들을 각 지파에 보내서 야베스를 구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 거룩한 희생과 용감함은 이스라엘 전 지파를 움직여 베섹에 모였고 그들은 먼 거리를 밤을 가리지 않고 행군해 와서 선제공격을 합니다. 야베스 성 앞에 버티고 잠든 암몬군을 향해서 말입니다. 역시 밤이란 상당한 의미를 줍니다. 내가 잠을 희생하고 일을 하느냐, 자만에 빠져 잠을 자느냐?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은 이스라엘이 한데 뭉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희생과 용감한 리드는 왕이 해야 하는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이런 사명을 다하느냐 하는 것인데, 대체로 조금만 안정이 되면 이런 일을 하지 않고 안이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전쟁은 밤에 잘 일어납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밤이든, 정신적인 밤이든.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밤이 아니라 낮이었고, 암몬에게 있어서는 밤인 것이 분명했지요. 여호수아 이후 사사기 시대는 사사들이 일어나 자신의 지파들을 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모두가 합심하여 전쟁한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러면서 하나의 나라로 세워집니다. 그 이전에는 12지파가 연방처럼 연결되어 지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위대한 나라로 굳건히 세워질까요?

예수님과 바울도 구약을 인정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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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왕이 되다(삼상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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