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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사울이 왕이 되다(삼상10:9-27)

사울이 왕이 되다(삼상10:9-27)

사울이 사무엘과 작별하고 돌아서는 순간 성령이 그에게 임했고, 사무엘이 예언한 징조들이 실제 다 이루어졌습니다. 사울과 그의 하인이 산에 도착했을 때 예언자들이 나와 사울을 영접했습니다. 바로 그때 성령이 강력하게 그를 사로잡았고 거기 있는 예언자들과 함께 예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언자들과 함께 있던 몇몇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데 기스의 아들 사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사울이 언제 예언자가 되었나?”하며 놀라워했습니다. 이때부터 “사울도 예언자인가?”((히)하감 사울 빤네비임)라는 유행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특별한 행동을 하거나 예상치 못한 말을 하거나 그의 행동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는 일이 벌어지면 놀리는 것처럼 “사울도 예언자인가?”하는 말을 하는 거지요.

사울의 삼촌이 사울과 하인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너희들이 어디에 갔다 오느냐?” “우리는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못 찾아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물어보기 위해 갔었습니다.” “그래? 그가 뭐라고 했느냐?” “우리가 온 사이 나귀를 이미 찾았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사울의 참으로 점잖고 겸손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경망스런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기에게 했던 사무엘 선지자의 행동을 다 말하며 우쭐댔을 것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말을 잘 따랐고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처음으로 엄청난 일을 감당하게 되니까 마음 한편으로 두려움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사울이 보여준 행동은 후에 왕이 된 뒤 보여준 것과는 다른 행동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다는 말이 이런 것에서 나온 모양입니다.

드디어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에 모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어 너희를 괴롭히던 원수의 손에서 구원해 주었다. 그러나 너희는 모든 재난과 고통에서 구원해 준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리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므로 지파와 집안 별로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왜 왕을 세우는 좋은 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나무라는 듯한 말을 했을까요? 성경에 보면 종종 우리와 다른 형태의 표현들이 나옵니다. 칭찬하면서 지적하는 말을 보고, 지적하면서 칭찬하거나 축복하는 말을 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조건 축복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 즉 공의로우시나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며, 때로는 다음 일에 대해 예언이나 암시를 주기 위함입니다. 사울을 왕으로 뽑아놓고 후회할 때 너희들의 잘못이지 하나님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려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 구분을 지어 사무엘 앞으로 모였습니다. 이 제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은 제비를 뽑았고, 베냐민 지파가 뽑혔습니다. 그 다음에는 베냐민 지파 안에서 마드리 집안이 뽑혔고, 마지막으로 마드리 집안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습니다. 그 순간 사울이 숨어버렸기 때문에 집안사람들은 두리번거리며 찾았습니다. 그들은 사무엘을 향해 물었습니다. “그가 우리 안에 있습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짐 꾸러미 사이에 숨어 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달려가서 사울을 찾아 데리고 왔는데 그는 용모로는 키가 커 다른 사람들이 그의 어깨 정도밖에 미치지 못하는 정도였습니다. 사무엘은 외쳤습니다. “이 사람이 여호와께서 왕으로 뽑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에 이 만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왕의 만세를 외쳐댔습니다.

여기서 지파의 우두머리들이 사무엘 앞에 모여 제비뽑는 광경을 하나님 앞에 모였다고 표현한 것과 그들이 제비를 뽑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구분하는 것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고대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대신한 선지자이고, 제비는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것을 정해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 당시는 그랬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지요. “하나님은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셨다.”(히1:1)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은 사울에게 이미 왕으로 선택하는 안수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비를 뽑아 사울이 당첨되도록 하신 것과 그의 모습이 모든 백성들이 보았을 때 바로 그들 자신이 바라던 바의 왕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들이 일치를 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단순히 한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취를 이루어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십니다.


단지 그 사이에는 그것을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그것이 사실인지 구분해야 하기도 합니다. 거짓 선지자도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영적으로 열려 있지 않으면, 또 그것을 객관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올바른 신앙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울이 왕으로 뽑힌 것은 사무엘을 통해서 계시한 것과 제비뽑기에서 사울이 뽑히는 것의 일치를 봅니다. 계시란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배울 수 있겠지요?

사울을 왕으로 뽑고 환호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무엘은 왕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백성들에게 알려주고 그것을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게 명하고 백성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사울이 기브아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 동행했으나 몇몇 불량배들은 “이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겠는가?”라고 하면서 무시하고 왕이 된 사울에 대해 예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아무런 반응이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여기도 우리는 성경이 보여주려는 몇 가지 교훈을 발견합니다. 왕으로 뽑히면 그만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키는 사무엘의 행동을 봅니다.


왕은 왕의 신분자체가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 의무가 있고,
백성은 왕을 어떻게 받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사무엘은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말한 바 있고, 상식적으로 다 아는 일이기도 합니다. 왕은 백성을 다스립니다. 그러나 백성을 보호하고 지켜야 하고, 그들이 삶을 잘 영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위상만 추구했지 섬김이라는 태도를 잊어버리면 그는 군림하게 되고 백성들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삼을 것입니다. 백성은 왕을 받들 때 세금을 내고 왕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주면서 그의 보호 아래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협력자의 입장이 아니라 노예적 인식으로 살면 마냥 약자로서 왕권의 위협 아래 지내게 됩니다. 왕과 백성은 각자의 책임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것은 서로를 향한 도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성경은 큰 자가 돕는 자라고 했지요. 다시 말하면 섬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 보지만 그렇게 한 왕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왕들은 자신의 위상만 내세우고 백성들을 마치 자신의 하찮은 도구로만 여겼습니다. 그런 왕국에는 진정한 평화가 존재할 수 없고 백성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왕은 백성이 소중하고, 백성은 왕이 소중해야 합니다. 왕이 거지의 옷을 입고 다니면서 검소에 앞장서는 것을 보이는 것을 백성은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백성은 왕이 왕의 모습으로 서있고, 백성을 잘 이끌어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백성이 없을 때 왕은 더 이상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은 왕으로 부름을 받는 자리에서 매우 어색해 했으며 그 후 돌아가는 길에 불량배들이 어떤 말을 해도 반응하지 않고 침착하게 돌아갔습니다. 이런 것들은 그가 왕으로 시작하는 행동에서는 잘한 처신으로 보입니다. 그가 “나요”하고 나타났거나, 불량배들의 조롱을 분노하며 대항했다면 경박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는 기름부음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가 왕으로 서서히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지요. 실제 왕과 왕의 군대, 그들을 다스리는 수장으로의 위상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섭리 앞에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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