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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나라에서 코로나가 시작된 지 7개월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말은 듣고 싶지 않은 말이기도 합니다. “왜 빨리 끝을 내지 못하지?” 우리 자신도 그 방법을 모르고, 정부도, 세계도 이렇다 할 해결할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두 노력하지만 안타깝게 생각할 뿐입니다. 단지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스스로 방역을 철저히 하는 것’입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 씻기를 자주하고, 손 씻기 전에는 절대 손을 입이나 코에 갖다 대지 않는 것, 그리고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 가는 일을 자제하는 것 등입니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을 왜 적었을까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좁은 지면에 다시 확인 차 써본 것입니다. 두세 달 전부터 교회로부터 확진환자들이 생기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한동안 뜸하더니 지난주부터 세 곳의 교회로부터 확진환자가 나왔다는 보도가 연이어 집중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조사를 해보니 잠깐 마스크를 벗거나 마스크를 아예 벗고 말을 하고, 식사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 남의 일 같지도 않고, 부끄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코로나 때문에 개별적인 모임도 갖지 못하고, 식사하는 일도 다 중단하고 있는데, 자신들은 괜찮다 생각하고 그랬을까요? 믿음으로 하면 하나님이 막아주실 것이라는 자기중심의 믿음을 들이민 것일까요? 초대교회의 부흥을 보면(이것은 단순히 숫자가 많아진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교회로 들어왔다는 것.) 로마 전역에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그 수는 엄청났습니다. 전염병에서 죽은 사람들은 주변 아무도 거두어주지 않았고, 심지어 부모형제들도 겁을 내며 떠났는데 기독교 교인들이 몸소 나와 시체들을 치우고, 병든 자들을 돌봤다고 합니다. 그러다 전염이 되어 그런 사랑을 베푼 자들 가운데 죽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놀랐습니다.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그리스도인들은 한다!” 희생이었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어쩌면 당시 의학적인 상식이 부족한 터라 무모한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깎아 내릴지 몰라도 그래도 그것은 세상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고 마음이 열렸습니다. 중세,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전염되어 죽은 사람이 너무나 많았던 것을 잘 아실 겁니다. 유럽인구의 1/3 혹은 1/2이 죽었다고들 표현할 정도였으니까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원인이 어디서부터인가를 놓고 수많은 학자들이 규명을 했지만 딱 이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중 일화가 있는데, 어떤 곳은 주민이 모두 죽어 동네가 전멸하는 일들이 발생했고 그 주변 동네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얻기 위해 절실한 마음으로 교회에 모여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그 사람들이 전멸한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잘 사용하는 예화입니다. 21세기, 현재,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요? “6-7개월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쳐 달라고 기도했는데 없어지지도 않고, 이렇게 질질 끌어가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없어!”라고 말할 것인가요? 아니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난 그런 것 생각 안하기로 했어!” 이렇게 말할 것인가요? “모이는 것은 무식한 행동이야. 그러니까 모이지 말아야 해.”일까요? 우리의 모든 행동은 단순히 그 행동으로 판단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겉으로 혹은 보는 시각, 통속적인 관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가가 우리에게는 핵심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앞에 올바른 행동인가 생각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과연 이 행동이 복음을 위한 것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성숙한 신앙인일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행위가 복음적인 목적과 충돌할 때 어떻게 되지요? 우리의 습관적인 믿음의 행위는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어제 부끄러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교회로부터 감염이 확산되므로 정규예배 외 모임은 금지한다.”라는 정부 브리핑이었습니다. “왜 교회만 가지고 그런 말을 하지?” “영업을 하고, 다단계 판매를 하고, 여럿이 모이는 경우가 많은데 왜 교회의 모임만 규제하는 것이지?” 등의 불쾌감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것은 이럴 것입니다. 어느 집단 모임의 수보다 교회의 모임 수가 많기 때문에 감염확산 가능성이 높고, 그들이 서로 만나는 것보다는 교인들이 만나는 것은 더 사랑으로 친화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파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교회가 정부로부터 ‘모임금지’ 지시를 받는다는 것은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를 탓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목사로서 우리가 이 말을 들을 일을 하며,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된 것에 가슴이 아픕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지탄이 아니라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바로 복음적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내어놓아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오게 하는 것, 그 사명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분파주의자가 아니고, 정당도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마스크를 쓰고 모든 사람 앞에서 우리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라고 봅니다. 부디 방송이나 사람들의 입에서 “시련을 이기려면 교회를 보라! 교회에서 배우라!” 이런 말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간절한 소원이며, 우리 모두가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말씀따라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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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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