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3:10~15 설교를 듣고
Q.
존경하는 목사님께.
늘 바른 복음과 깊이 있는 설교에 감사를 드리며 벧엘교회에 등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설교 말씀에 의문이 생겨 메일 드립니다. 고린도전서 3장을 맥락에 의해 보아야 함에도 많은 교역자님들이 해석하는 오늘 본문 구절은 맥락에서 벗어나고 맙니다.
제가 해석하는 3장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성도님이 해석하여 정리한 부분은 빼고 질문한 부분만 다루겠습니다.)
금 은이라고 녹지 않을까요? 3000도 이상이면 보석도 녹습니다.
(중략)
목사님, “금 은 보석 같은 공로를 내야지, 나무 풀 짚 같은 공로는 내지 마라.”는 뜻일 수 있겠습니까?
A.
(성도님의 질문 내용을 보고 축약해야 할지 그대로 내야 할지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몇 번을 생각하다 결국 성도님이 정리한 것을 빼고 질문한 것 중심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 다른 목사님들의 해석에 대해.
보기보다 목사님들의 성향은 각자의 성격만큼이나 다양합니다. 단지 전적으로 헌신되었느냐, 일부분이냐, 목적 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가 문제가 되는데요, 이렇든 저렇든 목사님인 것은 분명하니까 타 목사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합시다. 훌륭한 분들도 많습니다.
2. 비유는 어디까지나 그 물체의 상징, 의미, 느낌 즉 비유를 든 자의 의도에 맞추어 이해해야 합니다. (물론 비유가 잘못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바울의 비유는 틀리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강 같은 평화”라고 할 때, 어떤 사람은 “강물이 불어나면 얼마나 무시무시한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강에 빠져 익사하는 광경을 본 사람은 “강은 무덤”처럼 연상되기도 할 것입니다. 금, 은, 보석도 엄청난 열을 가하면 타거나 녹습니다. 바위도 녹고 다이아몬드도 타고, 지구도 녹아버릴 수 있습니다. 비유는 완벽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성입니다. 심판 날 열기가 몇천 도가 될까? 금이 녹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생각 안 해봤는데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설교한 요지는 신앙은 절대적으로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야 하고, 쉽게 타버리는 대충의 신앙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신중하게 잘 세워 시련 앞에서도 견뎌 상 받는 신앙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즐거운 신앙생활이 되기 바랍니다.
신앙상담 질문은 이메일: bethel0691@hanmail.net으로 보내주세요.
알림:
신앙QA에 질문을 할 때 몇 가지 안내를 드립니다. A4용지의 가급적이면 1/4을 넘기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되면 지면상 축약을 하거나, 중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질문한 본인의 의도를 조금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면 답변을 드리기 용이할 것이고,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은 공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양지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