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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방황을 끝내고 소망을 이루라

방황을 끝내고 소망을 이루라

인생을 놓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헛된 시간을 보내면서 방황함으로 생을 탕진하는 것 같습니다. 나 자신도 여기에 대해 “난 아니야”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자신을 돌아보면서 “이제 방황을 끝내야 해”라고 다짐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방황하는 것이 많습니다. 모든 것이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진정한 방향성을 갖지 못하면 방황일 수밖에 없습니다. 방황한다고 100%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얻는 것이 있긴 하겠지만 그런 식으로 살면 나중에 뭔가 하나 붙잡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은 친구 만나는 목적이 있으니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성 있고 소망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냥 시간을 때우고, 무료함을 달라기 위한 시간 탕진인 경우가 많습니다. 소파에 앉아서 TV를 시청하는 것도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앉아 있는 것도 방황의 일종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기 때문에 그냥 있을 뿐입니다.

내가 젊은 시절 이런 말들이 있었습니다. “결혼해라.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이다.” 남녀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빈둥거리며 지내다가 결혼을 하면 가정을 가지게 되고, 가정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 움직이게 됩니다. 저녁마다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에게 가정이라는 책임을 지워 그래도 인생의 의미를 억지로라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이런 표현도 전혀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너의 생의 목적이 뭐니?”라는 말을 들으면 답하기 막막해집니다.
생의 목적은 간단히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는 일들을 하면서 그 안에서 자기는 이렇게 살겠다는 목적을 갖는 것입니다. 번듯한 직장을 갖는 것은 지금의 목표가 될지 몰라도 목적은 될 수 없습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면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대학을 들어가는 것이 일차 목표이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학공부를 잘 해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시작이 되고, 계속적인 진통과 노력이 따릅니다. 결혼도 마찬가집니다. 많은 동화의 결말은 남녀 주인공이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끝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결혼은 열매임과 동시에 시작이라는 점이죠.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도 곁들이고 싶군요. 그러므로 이 모든 단계, 양태를 진행하면서도 내 중심에 가지고 있는 것이 목적인데요, 목적이 없으면 당연히 방황하게 됩니다.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할 목적, 즉 구심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적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요?

(제가 청년들에게 가장 자주 언급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대부분의 청년들이 목적을 어떻게 잡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나 자신도 그랬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잡아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알지 못해 상당한 기간 동안 괴로워했습니다. 일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계속해서 찾았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목사로 부르셨지만 그래도 목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단지 다른 목사보다 나은 목사, 목사다운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만 했었지요. 이것이 목적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나의 말은 인생에서 진정한 목적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왜 이것이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지요? 앞서 말한 대로 “어느 다른 목사보다 나아야 하지?” “목사다운 목사가 뭐지?” “그 다음은??” 이런 질문의 여지를 갖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고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욕망을 소망으로 착각하는 일입니다. ‘욕망이 소망을 끌어내고, 소망이 욕망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가령 좋은 직장을 갖는 것, 대학에 합격하는 것, 좋은 차를 구입하는 것, 멋진 옷을 입고 친구들 앞에 자랑하는 것, 좋은 배우자를 맞이하는 것, 명품을 갖는 것, 승진하는 것 등등 이것들은 욕망이자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욕망이 많으면 소망이기는커녕 욕망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거꾸로 소망이 많으면 욕망이 많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욕망이란 많이 가지고 그것들을 이루지 못하면 자신을 낙오자로 낙인을 찍어 버립니다. 따라서 소망이라고 말할 때 고상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는 현실을 놓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씨앗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지면 땅에 갇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씨앗이 땅에 갇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곧 싹이 나고, 줄기가 생기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소망의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씨앗의 목적은 열매입니다. 땅이 아니고, 땅에 갇혀 있는 신세도 아닙니다.

비록 오늘의 삶이 힘들고 막막해도 열매의 소망을 갖는다면 오늘에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을 것(고후4:8)입니다.

내가 언제, 어떻게 목적을 가지게 되었느냐 하면 ‘나는 어떤 목사가 될 것인가?’ ‘나는 내 인생의 어떤 진정한 목적을 가질 것인가?’를 놓고 수 년 동안 고민하던 중 “생명을 구원하는 설교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시시해 보이나요? 누구나 다 하는 말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냥 생각한다는 것과 생의 목적을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아세요?


이 목적이 뚜렷이 세워지니까 내 삶이 정렬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갖게 되는 욕망이 여기에 부합되는지 아닌지를 가리게 되고, 내가 지금 추구해 나가는 삶도 이것을 이루기 위한 삶인지 스스로 검증해서 통제를 하게 되고, 더욱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명예도, 인기도, 다른 사람보다 더 가진 것도, 즐거운 일도 좋은 것이 아니게 되었지요. 목적이 분명해 지니까 유혹을 이기는 힘도 강력해지고, 오늘 시련 앞에서도 아픔은 있어도 심하게 흔들리지 않게 되더군요. ‘생명을 구원하는 설교자’가 되어서 무엇 하냐고요? 세속적인 욕망에 치우치는 사람은 조금도 재미없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방황하던 나에게는 나를 굳게 붙드는 중심이 되었고, 끊임없는 소망이 되었지요. 생명을 구원하는 일은 하나님과 협업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고, 나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구원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끄실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의 소망과 평안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이라도 인생의 목적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래서 얻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태어나고 살다가 죽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더 낫기 위해, 내가 누리고 싶은 삶을 누리기 위해 살다가 못다 이루고 어느 순간 포기하고 종말을 맞이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살고 죽는 것은 같지만 그래도 소망이 넘치고, 인생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보람있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사람의 생은 넉넉한 데 있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부족함이 없고, 사망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있고, 그리스도를 부활 승천시키신 하나님을 만나 영원한 삶을 살 것입니다.

목적 없이, 정처 없이 방황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으므로 그 목적을 향하여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고전 3:10~15 설교를 듣고

고전 3:10~15 설교를 듣고

어느 예배를 드리는 게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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