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사무엘을 만나다(2) (삼상9:10~24)
청년 사울은 종과 함께 서둘러 사무엘의 집을 향했습니다. 사울이 찾아오기 전날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 사실을 계시하셨습니다. “내일 이맘 때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너에게 보낼 것이다. 그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아라. 그가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내 백성을 구해낼 것이다. 이것은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나에게 상달되어 내가 너희에게 응답하는 것이다.” 사무엘이 사울이 오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내가 말한 그 사람이다. 이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사울은 성문을 지나 한 집 앞에 서 있는 사무엘에게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여기 선견자의 집이 어디 있습니까?” 사무엘은 “내가 그 사람이오.” 답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먼저 산당으로 올라가시오. 내가 그대들과 함께 산당에서 먹을 것이오 내일 아침에 그대를 보낼 때는 그대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다 말해주겠소.”
“사흘 전에 잃은 암나귀에 대해 염려하지 마시오. 이미 찾았소. 온 이스라엘 백성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인가? 그대와 그대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겠소!”
사울은 선견자의 말에 놀라 몸을 낮추고 말했습니다. “선견자님, 제가 속한 지파는 가장 작은 지파이며, 우리 집안은 그 지파 중에서 가장 미약합니다. 그런데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사무엘이 사당에서 사울과 종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귀빈석에 앉혔고 그때 초청받은 사람들이 30명 가량 되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요리사를 불렀습니다. “내가 미리 명한 것을 가져오너라.” 요리사는 넓적다리와 거기 붙은 살 요리를 사울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 사무엘은 말했습니다. “자, 드시게. 이것은 내가 그대를 위해 준비해 둔 것이네.” 그날 사울은 사무엘과 중요한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이 내용 가운데 몇 가지 의미 있는 표현은
사울의 암나귀를 잃고 사무엘을 찾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미처 짐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나서 그것을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셨구나!”하고 깨닫습니다. 따라서 오늘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의 삶에 와있고,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원했고, 사무엘은 그에 대한 폐해에 대한 경고를 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은 받아들이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뜻을 이루는 과정과 훈계를 위해서 응답하실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편에서는 응답을 받았다고 해서만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단편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그것은 결과라기보다는 과정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좋은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지금 현재의 지도자이고, 왕 제도를 반대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백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심으로 그는 성실한 종으로서의 도리를 다합니다. 사울이라는 무명의 청년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를 만나고 그를 지도자로서 대접을 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지요. 인간은 감정이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놀라운 인격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사울은 왕이 될 만한 객관적인 요소를 다 갖추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고백했듯이 사울은 베냐민 지파요, 기스의 아들이라는 보잘 것 없고 미약한 출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것에 대해 이런 저런 평을 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시험에 빠집니다. 하나님이 택하셨으면 하나님이 이끄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를 내세우지 못하도록 약한 것에서 택하시고, 부족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문제는 택함을 받은 것과 쓰임을 받는 것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택하심도 이해되지 않고, 이끄심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택하심에 대해서는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적합한 사람을 택하셔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또 이끄신다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택하셨으면 이끄심에 대해 확실하게 보여주셔야 하는데 그의 순종이 없이는 하나님은 기쁘게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은 너그러우셔서 일단 택하시면 좀 못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으로 무한한 은혜(때에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베푸셔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산신령이나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해주는 무속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는 것으로서만의 신이 아니라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시고, 단련시키시고 함께하시고, 이끌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 안에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과정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목적이 무엇이냐고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에 가는 것이지요. 부르심에 대한 감격이 있다면 이끄심에 대한 순종과 궁극적인 자리로 인도하실 것을 감격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믿음의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