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의 대화(3)
질문 형식적으로 바뀌어가는 신앙을 극복하고 싶고 또 예배에 소홀해질 때 어떻게 하면 신앙을 더욱 단단히 할 수 있을까요? 답변 형식적인 신앙이라는 것을 느낀 것은 그래도 개선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형식적인 신앙의 반대말이 무엇일까요? 진지한 신앙, 참된 신앙?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거의 정리가 되겠군요. 내가 예배에 진정성을 가지고 임하는 것, 매번 그렇게 하는 태도가 형식적인 신앙을 극복하고 진지한 신앙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질문 뒤에는 무슨 비결이 없는지 궁금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비결이라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다가서는 예배생활을 함으로써 자기 나름대로의 안정되고 건강한 신앙습관을 갖게 됩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신비로운 현상이 일어나면 신앙이 더 솔깃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정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신비로운 역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건전하고 진실된 신앙으로 다가오기를 바라십니다. 질문 진로를 결정할 때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은 너무 큰 희생을 요구하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어떤 점에서 큰 희생이 따르는가요? 개인적인 견해가 아닐까요?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선입견을 갖습니다. 그것은 뭍의 생활만 해온 사람이 물의 생활을 두려워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일 것입니다. 막상 신앙생활을 잘 하면 희생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간혹 희생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것 또한 내가 피해를 본다기보다 대가를 치른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더 큰 기쁨으로 나아간다고 보아야 합니다. 단지 우리가 가지는 피해의식은 세상에 뿌리를 박고 싶은 마음이 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질문 남자와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습니다. 나는 신앙적인 기준을 가지고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다가 결혼하기를 바라지만 남자친구는 그 이상을 요구하고, 어떤 부분은 나의 신앙적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스킨십, 여행, 주일성수, 헌금생활 등.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변 난처하겠군요. 그래서 지혜란 것이 필요하고, 믿음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나도 자매님의 현장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딱 잡아 “이렇게”라고 말하기가 곤란하군요. 또 막상 내가 자매의 입장이 되어도 고민하게 될 겁니다. 그래도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것은 ‘결혼전제 조건’과 ‘결혼’은 엄연히 다른 것이 아닐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결혼식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된 상태에서 서로에게 상처와 티가 될 일은 지혜롭게 다루어야겠지요. 신앙에 대해 견해차가 있을 때는 설득해야 하는 것, 이해를 시켜야 하는 것, 세월이 흐르면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 등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현명하게 행동하기 바랍니다. 질문 나의 직장을 주님이 주신 것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직장을 벗어나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일까요? 답변 단순히 직장을 떠난다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일이라도 자신의 능력이나 취향이 맞지 않으면 그만 둘 수 있습니다. 이런 선택을 하나님이 잘못했다고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직장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나 자신만을 위해 떠나는 것은 시기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겠지요. 이 세상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은 ‘나’라는 한 생명, 그리고 의지를 주셨습니다. 나에게 맞게 일하는 것과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질문 스펙에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고 입사를 했는데 신앙이 없는 선배들이 부당한 일들을 시킵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거절해야 할까요? 아니면 질서를 따라 순응해야 할까요? 답변 우리가 만족할 만한 직장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직장들이 다 그럴 것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내가 계속 있을 곳인지 아닌지를 놓고 기도하면서 결정해야겠지요? 상관들의 지시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이 많을 겁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모였다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봅니다. 사람마다 신앙이 차이가 있고, 성격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선배들이 시키는 일을 따를 것인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형제의 결정입니다. “나는 신앙인으로서 그런 일은 못해.”라고 판단되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괜찮다고 판단되면 해도 되는가 하면, 딱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되는 것이 하나님이 금하는 것이거나, 하지 않는 것 더 좋은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능동적인 생각을 해보세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일까? 작은 일이 쌓여 큰일이 되고, 좋은 일이 쌓여서 엄청난 삶이 됩니다. 아마 형제는 내가 이래라, 저래라 확실하게 이분법을 말하듯 해주기를 바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많은 일은 세분해서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생깁니다. 이런 것은 어떨까요? “미안하지만 나는 못하겠습니다. 그것 말고 다른 일은 없을까요?” 이렇게 거절하는 것도 좋겠고, 또 어떤 형제의 경험담을 소개하면 “나는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너무 격한 표현을 했지만 그 형제는 그때로부터 그런 일에서 확실하게 제외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칭찬까지 받으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