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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행복한 가정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부부가 이혼 법정에 섰다. 판사가 이혼 신청을 한 부인에게 물었다.

“부인, 이혼 사유가 무엇입니까?” 그 부인은 답했다. “성질이 급하고, 물불을 가릴 줄 모르는 행동에 너무 많이 상처를 받아 같이 살 수 없습니다.” 판사가 다시 물었다. “두 분이 결혼할 때는 남편의 어떤 면이 좋았습니까?” 부인은 답했다. “성격이 화끈하고, 불의를 참을 줄 모르는 그런 단호함이 좋았습니다.” 판사가 다시 말했다. “그것이 그것 아닙니까?” 부인의 답은 이랬다. “결혼하기 전에는 멋져만 보였는데 결혼하고 나니 감당이 안 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시중에 돌아다니는 유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인용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생각해 보게 하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좀 더 확대해서 상상해보면 이 부인은 젊었을 때 가족들이 미지근한 성격이었는지 모릅니다. 그것에 염증을 느꼈는데 한 남자가 대시를 해왔고, 사귀다 보니까 남자답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어느 자리에서 일이 벌어지면 나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몸을 사리지 않고 대담하게 나서는 그의 모습은 마치 영웅을 보는 듯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난 뒤 집안에서 이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떤 일이 일어나면 아내의 말을 듣기도 전에 행동을 취해버리고, 화를 불같이 내고, 아이들이 태어나자 아이들을 단호히 처단하는 것을 보게 되니 아내가 감당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말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다툼도 해서 고쳐보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이 상하고 괴로워졌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혼 신청을 했겠지요?


당신은 어떻게 하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보십니까?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행복한 가정은 만들어지는 것이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뇌리에는 ‘행복이란 행운과 비슷하고, 복 받으면 얻게 된다.’는 식의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두 사람의 성격이 온순하고 너그러우면 욕심내지 않고 상대방에게 다그치는 일이 없이 포용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또한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지 그냥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우선, 사랑과 존중이 있어야 하겠지요. 사랑하지만 존중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존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아주 강한 사랑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쉽게 주는 경우는 존중이 없기 때문이고, 상대방은 존중한 나머지 거리감이 느껴져 다가서는 사랑이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해란 상대방의 성격과 특성 등을 이해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행동이 나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납득이 되지 않아 신경이 곤두서고 그것이 쌓이면 갈등을 빚게 됩니다. ‘왜 그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지 말고, 왜 그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인 일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치 있는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또한, 인내와 희생이 없이 행복한 가정을 일굴 수 있을까요?

한 송이의 꽃도, 한 알의 열매도 비와 바람과 번개를 겪고 이겨낸 결과입니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인내와 희생을 말하면 피해의식부터 먼저 떠오릅니다. ‘내가 그렇게 하는 동안 저 사람은 더 나빠지고 나를 이용하려 들 거야.’하는 생각 때문에 이 성품을 이루는 일을 계속 가져가지 못합니다. 세상에 좋은 것은 무엇이든지 인내와 희생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한다면, 공감과 대화입니다.

상대방의 말에 공감해주고, 존중하고, 격려해주는 대화를 생활화한다면 행복한 가정이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나와 상반된 의견을 말하면 참기는 하지만 얼굴에는 분노하는 표시가 역력하고, 때로는 ‘이때가 기회다.’라고 판단하고 상대방을 침몰시키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같이 살고, 누구보다 많은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으니까요.


여기까지 말하니까 나 스스로 부끄러워집니다.

내가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 비난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너나 나나 다 이것을 마음에 두고 행해야 한다는 것이지, 내가 해보니까 이렇게 해야 하더라는 말은 아니니까요.


사실 이렇게 하면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을까요?

아마 어느 정도 가정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위에서 내가 말한 것을 모를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단지 기억하지 못하거나 정리해서 마음에 숙지하지 않는 것일 뿐이지요. 아무리 알아도 행하지 않으면 아는 것을 쟁취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할 의사가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알아도 내 마음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행동해야 하는 것을 할 마음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조금의 징검다리를 놓아준다면, 두 마디를 조언합니다. 하나는 ‘피해의식을 버리라.’라는 것입니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자신이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오히려 나빠질 것만 머리에 떠오르기 때문에 어떤 좋은 것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합니다. 또 하나는 ‘참지 못하면 참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의 마음은 참 이상하게도 안 하면 안 하는 공간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채워진다는 것인데, 이것은 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냥 빈 공간이 아니라 악으로 채워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좋은 쪽으로 행동을 해보세요. 칭찬, 위로, 격려, 용서, 섬김, 희생 등, 이것들은 다 사랑의 행위들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이치를 알고, 그럴 마음이 있어 행동에 옮긴다 하더라도 기대한 대로 안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짐승의 마음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인간보다는 훨씬 단순할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인간은 그만큼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이끄시고, 우리 자신을 이끌어 주셔야 한다는 것과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 역사해주셔야 하고, 나는 나 자신도 아니고 상대방도 아닌 하나님을 섬김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오월, 가정의 달이라는 말을 누구나 하지만 누구나 행복한 가정을 갖지는 못합니다. 사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가정을 꾸렸는데 말입니다. 이제 이 사실을 상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결혼한다고 행복이 절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가정이 행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끄셔야 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127:1)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선물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