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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사울이 제사장인가?(삼상13:1-9)

사울이 제사장인가?(삼상13:1-9)

사울은 나이가 40이었고, 왕위에 오른 지 2년째였습니다. 마음에 블레셋을 몰아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3천 명이나 되는 군사를 모았습니다.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은 자신과 아들 요나단이었는데 자신은 벧엘 산에 주둔하고 아들 부대는 기브아라는 곳에 주둔하게 했습니다. 당시 블레셋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성 근처 수비대를 두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이전 이스라엘과 전투에서 승리하여 지배한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의 군대가 게바에 있는 블레셋의 수비대를 공격한 것입니다. 그곳 블레셋 수비대들은 죽었고, 이 소식이 블레셋 본국으로 전해졌습니다. 블레셋은 분노하여 이스라엘을 총공격할 준비를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스라엘 남은 백성들은 긴장과 두려움 가운데 길갈에 있는 사울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블레셋은 벧아웬 동쪽 믹마스라는 곳에 몰려와 진을 쳤는데, 전차 3만 대, 마병이 6천 명이었습니다. 그러니, 보병은 얼마나 되었을지 모르지만 이것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의 10배가 넘는 수입니다. 이 엄청난 병력을 지켜본 이스라엘 군대는 깜짝 놀라 간담이 내려앉았고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굴, 수풀 속, 바위틈, 빈 무덤, 웅덩이를 찾아 다급하게 몸을 숨겼습니다. 심지어는 아예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쪽으로 도망을 가기도 했습니다. 사울은 전세를 살피며 미동도 하지 않고 길갈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초조하고 급박한 긴장감으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사무엘 선지자였는데, 전쟁 전에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제사를 드리고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전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애간장을 녹이는 7일이 지났음에도 사무엘은 오지 않았습니다. ‘왜 속히 안 오는 거지? 늙어서 잘 움직이지는 못하나? 지도력이 내게 넘어온 것을 시기하는 것인가? 이 전쟁이 이길 승산이 없으니까 뒤로 숨는 것일까?’ 등의 생각들이 사울 왕을 괴롭혔을 것입니다. 지도자로서 마음을 먹고 모은 군대를 유지시키려면 빨리 와서 제사를 끝내고 마음이 식기 전에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사울의 마음과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더 도와줘야지.’ 하는 마음에 반발감마저 들기 시작했겠지요. 블레셋의 엄청난 군대는 일전하여 점점 다가오고, 사무엘 선지자는 나타나지 않자 그동안 참고 있던 군인들마저 하나씩 둘씩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다급하여 더 이상 참고 기다릴 수 없는 사울 왕은 번제와 화목제물을 가져오게 하여 자신이 직접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를 집전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무엘상 13장 1절-9절까지 내용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눈엣가시였습니다.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블레셋의 병력은 강력해서 항상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고, 이스라엘이 가슴을 펴고 살려면 블레셋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당시는 블레셋의 영토, 이스라엘의 영토가 있었지만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점령하면서 수비대를 이스라엘 성 근처에 주둔시켰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감사하고 간섭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울이 초대 왕이 된 자로서 블레셋을 몰아내야 한다는 숙제를 풀고자 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러나 수비대만 몰아낼 수 없습니다. 수비대를 공격한다는 것은 곧 블레셋을 공격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블레셋이 가만있을 리 없지요. 그런 면에서 사울은 좀 더 생각하고 계획했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젊은 요나단이 기회를 탔다고 보고 한 수비대를 공격해서 블레셋 사람을 죽인 것은 경솔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일단 이렇게 되었다고 보고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 전면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겠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니까 엄청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보다 더 좋은 장비로 무장해서 10배나 더 많은 수가 몰려온 것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음의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의뢰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판단해야겠지요? 화해를 시도할 것인지, 전쟁을 할 것인지, 전세를 어떻게 몰고, 어느 정도 지나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그러나 사울은 이 전쟁을 치르기 전에 사무엘 선지자를 모시고 제사를 드려 하나님의 허락과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울의 입장이 되면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블레셋 군대의 위용을 보고는 군사들 중에 겁먹고 도망가는 자들이 많았고, 별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몸을 숨기는 일들, 심지어는 요단강을 건너 도망가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전쟁을 시작한 것을 후회했을까요? 비겁한 자들이라고 분노했을까요? 지도자의 입장은 전쟁을 돌이킬 수도 없고, 도망가는 자들을 잡아올 수도 없는 형편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인간이 아닌가?” 두려움에 쌓일 때 이런 생각도 했겠지요.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이 된 상황이니 지도자로서 어떻게든 해봐야 합니다. 그가 사무엘 선지자에게 이 전쟁을 상의하고 시작한 것인지, 일전이 벌어질 태세가 되었을 때 사무엘 선지자를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긴박한 순간이 흘러가고 있음에도 사무엘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7일이나 숨막히게 흘려갔습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제사장의 일을 시행했습니다.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리는 일을 집전한 것입니다. 이 제사들은 우리 자신의 죄를 태워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이 전쟁에서 인도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사울에게 있어 가장 큰 오점이 됩니다. 나중 사무엘 선지자가 지적하지만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종이 할 일을 자기가 해버렸다는 것은 망령된 짓입니다. 사울은 이렇게 변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언제 블레셋이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선지자님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군대는 와해될 지경에 놓여있었습니다. 전쟁을 쳐야 할 군사들은 떨고 사기가 저하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안 드리는 것보다는 나라도 드리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이 한 가지의 행동은 사울의 모든 성격과 삶을 설명해주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경솔함’. 우리가 보기에는 경솔하다고까지 할 수 없을 것 같고, 그만큼 기다린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 인내하지 못하는 것, 이 모든 것이 경솔함에 해당됩니다. 사울의 전쟁 시작이 하나님 앞에서 잘 되었는지,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점점 더 위기로 향해 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정적인 일은 무엇인지 등을 알고 하나님 앞에 굳게 설 때 하나님이 기뻐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에 보겠지만 제사를 드리고 나자 바로 그렇게 기다리던 사무엘이 도착합니다. 사무엘의 도착은 사울이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는 것으로 판단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에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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