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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석 목사

세상에게 가장 모범적인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목회철학이며, 나의 염원입니다.

소개 및 철학

인생을 아름답게 산다는 것

인생을 아름답게 산다는 것

인생을 아름답다고 할 때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 때 머리에 떠오르는 장면은 무엇인가? 아마 대자연의 풍경이나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 가장 쉽게 떠오를 것이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된 즉 보인 모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나는 그런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타고난 태생을 좋아하지만(천성이 게을러서) 진정한 아름다움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수학자들은 어려운 수학문제를 기막히게 풀어내는 것을 아름답다고 하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달리는 선수가 앞으로 박차고 나오는 것을 아름답다고 외친다. 야구에서는 더블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거나 다이빙 캐치 등의 멋진 플레이를 보면서 아름답다고 한다. 축구에서는 멋진 드리블이나 잘 짜인 플랜을 통한 패스에서 슛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한다. 이것들의 공통점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이렇듯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된 상태를 아름답다고 하든지, 정반대로 힘들여 멋진 모습을 창출하는 것을 아름답다고 하든지 이다. 당신은 어느 쪽을 더 아름답게 보는가? 이것은 당신의 취향이고,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정말이지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것은 아름다운 것을 봄으로 아름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가운데 훌륭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아름답다고 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야 한다. 또 남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을 감탄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그런 상황을 창출하는 아름다움의 도출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면 그 사람의 인생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기야 자신은 그렇게 해놓고 스스로는 아름답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객관적으로는 그런 사람은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것만은 사실이다.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대리만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피와 땀으로 결승선에 골인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찰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이 부담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다. 아름다움을 애써서 만들어야 하나? 참 이율배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을 대하는 관념부터 바꾸어야 할지 모르겠다. 언젠가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영화의 배경은 유대인들을 잡아 온갖 실험 대상으로 삼아 죽이는 2차 대전의 아우슈비츠 현장이다. 주인공은 유대인이라는 죄목으로 여기에 끌려와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곧 독가스를 마시고 죽게 될 것이다. 그는 결혼을 해서 5~6살 정도 되는 아들 그리고 부인과 함께 끌려왔다. 부인은 여자수용소 구역으로 갔고, 자신은 아들과 함께 남자 수용소에서 지내는데 아들을 보살피면서 마치 수용소 소꿉놀이를 하듯이 지낸다. 이렇게 천진난만하고 낙천적일 수 있을까? 죽음 앞에 있으면서 죽음을 모르듯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가능할까? 제정신인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데 뭐라 하겠는가? 영화의 끝은 이렇다. 아빠는 아우슈비츠에서 죽는다. 아들은 엄마와 조우를 했고 전쟁이 끝나고 풀밭에서 소풍을 즐긴다. 잘 모르지만, 그 영화는 “인생이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이 아름답게 살면 아름다운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생에는 아름다운 면이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즐기는 자만이 그 아름다움을 갖는 것이다.” 는 등의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고 저변에는 아름다운 것은 태생적이며, 그 자체를 가질 때 아름다움의 소유자가 된다는 전설이 가득 깔려있다. 이러한 태도는 아름다움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거나 잘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아름답고 멋진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런 생각은 결국 게으른 자의 삶으로 유도하고 아름답게 하려는 노력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름다움을 취득하려고만 한다. 또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을 아름답게 보지 않고 섬김을 받는 것을 아름답게 본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내가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만약 당신이 이런 마음의 거룩한 야망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좋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우리에게 보여준 여러 가지 모습 가운데 하나는 된 아름다움이나 보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창조하시고 난 뒤 잘 되었다는 의미에서 아름다움이다. 즉 무엇을 만들고 이루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신 것이다. 안식이란 일한 것과 연관된 것이기 때문이다. 일전에는 휴식기간에 나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다닌 적이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아무리 보아도 다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본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또 그런 아름다움을 그리워하고 찾아가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름다움을 창출해내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그 모든 것을 주시고 다스리고 충만하라고 사명을 주셨다. 왜 하나님은 자기가 창조한 만물을 놓고 아름답게 여기고 감상하라고 하지 않으셨을까?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리 잘 생겨도 아름답다는 말을 성경에 표현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아름답다고 하실 때 보면 그 사람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것을 두고 말씀하신다고 본다. 여기서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다. 내가 권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라. 그것이야 말로 아름답게 사는 것이고, 그 사람이 아름답다고 믿는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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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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